ADVERTISEMENT

인양 25분 만에 선체 모습 드러내…좌측 선미 움푹 들어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침몰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호의 선체 인양작업이 시작돼 선체가 수면 위로 올라온 11일(현지시간) 방호복을 입은 구조대원들이 이날 수습한 시신을 향해 거수경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침몰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호의 선체 인양작업이 시작돼 선체가 수면 위로 올라온 11일(현지시간) 방호복을 입은 구조대원들이 이날 수습한 시신을 향해 거수경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1일(현지시간) 다뉴브강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유람선 허블레아니호는 침몰 사고 당일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크루즈선 바이킹 시긴호에 들이받힌 좌측 선미는 움푹 들어갔고 갑판의 난간은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었다. 갑판 위로는 구명 튜브와 유람선의 의자들이 나뒹굴었다.

조타실·갑판 인근에서 4구 발견 #헝가리인 선장 추정 시신 수습 #유람선 체펠섬에 옮겨 정밀 감식

모습을 드러낸 허블레아니호의 선수와 선미는 침몰 당시와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 있었다. 바이킹 시긴호가 허블레아니호의 좌측 선미를 들이받으며 밀고 간 뒤 7초 만에 가라앉는 과정에서 다뉴브의 빠른 유속으로 배의 방향이 반대로 돌아간 것이다.

이날 한·헝가리 당국의 선체 인양 작업은 오전 6시47분에 시작돼 오후 1시 30분에 종료됐다. 사고 발생 13일 만이다. 200t 규모의 대형 크레인선 클라크 아담이 4개의 와이어로 유람선을 결속해 천천히 들어 올렸다. 시작 25분 만에 조타실이 모습을 드러냈고 헝가리인 선장으로 추정되는 시신 1구가 오전 7시43분에 수습됐다.

수색요원들 고인에게 정중히 경례

헝가리 시민들이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인근에서 인양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AP·연합뉴스]

헝가리 시민들이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인근에서 인양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AP·연합뉴스]

관련기사

약 20분 뒤 조타실 바로 옆 갑판 인근에서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시신 2구가 잇따라 발견됐다. 그중 1구는 실종 상태였던 6세 여아로 추정됐다. 다시 10분 뒤 선실과 갑판을 연결하는 계단 아래에서 한국인 추정 시신 1구가 더 발견됐다. 인양 1시간30분 만에 조타실과 갑판에서만 4구의 시신이 수습됐다.

조타실과 갑판까지 수습이 끝난 뒤 선미 부근의 심한 선체 훼손이 발견돼 당국은 추가 와이어 연결 작업을 진행했다. 인양이 끝난 후 선실 수색 작업을 했지만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다.

갈 크리스토프 헝가리 경찰청 대변인은 인양 작업이 종료된 뒤 기자회견을 갖고 “남은 4명의 (한국인) 실종자에 대한 수색 작업을 이어갈 것”이라 말했다. 핀테르 샨도르 헝가리 내무부 장관도 이날 오전 경찰선을 타고 인양 현장을 방문했다. 핀테르 장관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사고 가족들에게 “인양 및 시신 수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인양이 완료된 허블레아니호는 사고 현장에서 약 10㎞ 떨어진 체펠섬으로 이동해 정밀 감식을 받게 된다.

한·헝가리 수색요원들은 잠수복과 방호복을 입고 수습 작업을 진행했다. 수습된 시신은 검정색 천으로 만든 낭에 싸여 바지선 위로 옮겨졌고, 수색 요원들은 고인이 된 이들에게 정중히 경례했다. 수습된 시신들은 부다페스트 세멜바이스 병원으로 옮겨 신원 확인 작업을 진행했다.

인양된 허블레아니호의 선체 바닥 일부(원 안)가 훼손돼 있다. [AP·연합뉴스]

인양된 허블레아니호의 선체 바닥 일부(원 안)가 훼손돼 있다. [AP·연합뉴스]

실종자 가족 등 사고 가족들은 현장 인근 머르기트 섬에 위치한 헝가리 수색본부에서 헝가리 당국이 촬영하는 실시간 영상을 통해 인양 과정을 지켜봤다. 가족들은 전날까지도 현장 인근에서 인양 과정을 보려 했지만 외부 노출 우려에 수색본부를 택했다. 가족 중 일부는 시신이 수습되자 세멜바이스 병원으로 심리치료사들과 함께 이동했다. 현지에는 아직 일부 생존자와 40여 명의 가족이 시신 수습과 장례 절차 등을 위해 머물고 있다.

이날 인양작업엔 크레인선 클라크 아담과 3개의 바지선이 동원됐다. 한국 수색요원 10여 명을 포함해 한·헝가리 요원 200여 명이 구조 현장에서 시신 수습과 와이어 결박, 선체 인양 작업을 진행했다. 시신 유실 위험에 대비해 이날 다뉴브강 하류에는 헝가리 수색정 11대가 브이(V)자 모양으로 배치됐다.

크루즈 선장은 여전히 혐의 부인

헝가리 검경은 허블레아니호와 바이킹 시긴호의 추돌 지점 등에 대한 정밀 추가 조사를 할 예정이다. 바이킹 시긴호의 유리 C(64) 선장은 자신에게 적용된 과실치사와 항해법 위반 혐의를 여전히 부인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헝가리 당국에 두 혐의와 함께 유리 선장의 사고 뒤 도주(뺑소니)와 구조 미흡 혐의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다만 헝가리 수사 당국은 “현재 수사 중이라고 밝힌 내용(과실치사·항해법 위반) 외에 다른 혐의에 대해선 말해주기 어렵다”고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는 “우리 측 입장을 지속적으로 전달하며 헝가리와 사법 공조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인양 현장은 한국과 헝가리 언론에 모두 공개됐다. 양국의 취재진 100여 명이 머르기트 다리와 다뉴브강 인근에서 인양 과정을 보도했다. 양국 방송사 모두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헝가리 당국은 취재진을 제외한 일반 시민들의 현장 출입을 통제했다. 하지만 헝가리 시민 수백 명은 이날 새벽부터 사고 현장에서 500m 이상 떨어진 강둑 너머에서 인양 과정을 지켜봤다. 시간이 지날수록 헝가리인의 숫자는 늘었다. 이날 오전 6시부터 현장을 지켜본 타마스 팹(39)은 “한국인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뿐”이라며 “이날만큼은 그들과 함께하고 싶어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부다페스트=박태인·김정연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