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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반칙하면 파국…'맞춤아기' 탄생의 두려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41)

과학의 발달로 부모의 기준이 모호해졌다. 생물학적 부모도 있고 그냥 키워준 부모도, 자궁을 빌려준 부모도 있다. 가수 리키마틴은 2008년 대리모를 통해 두 아들을 얻었다. [중앙포토]

과학의 발달로 부모의 기준이 모호해졌다. 생물학적 부모도 있고 그냥 키워준 부모도, 자궁을 빌려준 부모도 있다. 가수 리키마틴은 2008년 대리모를 통해 두 아들을 얻었다. [중앙포토]

부모의 판별이 헷갈리는 시대가 도래했다. 낳아준 엄마와 키워준 엄마, 이런 고전적인 의미로 따지는 것이 아니다. 과학의 발달로 부모의 기준이 모호해졌다는 거다. 생물학적 부모도 있고 그냥 키워준 부모도, 자궁을 빌려준 부모(대리모)도 있다. 두 엄마에 한 아빠라는 것도 있어 도무지 뭐가 뭔지 헷갈린다.

심지어 복제아기도 있고 맞춤 아기도 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여성이 정자은행으로부터 정자를 분양받아 아빠가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으며 민망하게도 엄마이면서 할머니가 되고 아빠이면서 할아버지가 되는 경우도 있다. 무슨 그런 망발이냐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딸의 대리모 역할을 한 친정엄마, 무정자증인 남편 대신 시아버지의 정자로 실제 애를 얻은 경우가 그렇다.

심지어 부모가 없는 아이도 있을 수 있다. 체세포 2개로 하나는 정자로 또 하나는 난자로 만들어 태어나는 아이도 기술적으로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내 머리카락 세포(아무 세포나) 2개로 난자와 정자를 만들어 수정하고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시켜 태어난 아이는 누가 엄마고 누가 아빠인가? 내가 아빠도 되고 동시에 엄마도 되는 건가?

윤리가 어떻고 자연의 섭리가 어떻고, 신에 대한 도전이니 하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시대가 바뀌면 윤리도 바뀌는 법. 신에 대한 도전도 유신론자에게나 통할 뿐이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 행해지는 행위이긴 하지만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이다. 하나하나 짚어보자.

국내 한 난임센터 연구원이 체외수정(시험관아기) 시술을 위한 사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중앙포토]

국내 한 난임센터 연구원이 체외수정(시험관아기) 시술을 위한 사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중앙포토]

생물학적 부모는 난임이나 불임부부가 타인의 정자나 난자를 빌려 태어난 아이의 경우에 해당한다. 체외수정이나 인공수정으로 수태를 시킨다. 정자를 빌렸을 경우는 인공수정, 난자를 빌린 경우는 체외수정으로 한다. 이때 빌려준 쪽이 생물학적 부모다. 확대해석하면 이 경우도 부모는 세 명이다.

대리모는 임신이 불가능할 때 타인의 자궁만 빌리는 경우이다. 부부의 난자와 정자를 채취하여 시험관에서 수정시키고 대리모의 배 속에 착상시켜 임신하는 방법이다. 대부분 금전이 오간다. 법적으로 허가된 나라가 몇몇 있어 원정출산도 잦다. 출산하고 대리모의 마음이 바뀌어 분쟁도 자주 일어난다. 이것도 형식상 부모가 셋이 되는 셈이다.

복제아기는 복제 인간이라고도 한다. 세포핵을 치환하는 방법이다. 모든 생물의 형질은 유전자(DNA)가 결정하기 때문에 태어난 아기는 온전히 핵 제공자의 형질을 닮게 된다. 정상적 난자와 정자를 수정시켜 태어난 아기는 부모 양쪽의 유전형질을 물려받는 데 말이다. 난자로부터 엄마의 유전자를 제거하고 복제하고자 하는 인간의 체세포 유전자(핵)를 삽입하여 태어난 아기를 일컫는다.

현재로도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나 아직 표면적으로 태어난 아기는 없다. 이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이때도 난자는 제공받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자궁을 빌려주는 엄마는 따로 있다.

복제는 동물한테 자주 적용된다. 자식같이 키우다 죽은 애완견의 세포를 남겼다가 똑같은 개를 복제하기도 한다. 사진은 우리나라 순수 토종인 얼룩삽살개가 300여년만에 복제된 모습. 김성태 기자

복제는 동물한테 자주 적용된다. 자식같이 키우다 죽은 애완견의 세포를 남겼다가 똑같은 개를 복제하기도 한다. 사진은 우리나라 순수 토종인 얼룩삽살개가 300여년만에 복제된 모습. 김성태 기자

이런 복제는 동물한테는 자주 적용하는 방법이다. 자식같이 키우다 죽은 애완견의 세포를 남겼다가 똑같은 개를 복제하고, 멸종된 늑대를, 심지어 얼음 속에서 썩지 않고 있던 매머드까지도 복제한다고 부산이다.

한때 떠들썩했던 황 모 씨의 핵 치환 줄기세포와 조제방법이 이와 비슷하다. 아무 난자나(?) 빌려 그 속 유전자(n)는 제거하고 복제대상의 체세포유전자를(2n) 집어넣어(핵 치환) 자궁에 착상시키면 복제아기가 되고 시험관에서 키우면서 줄기세포로 성장한다는 실험원리다.

맞춤 아기는 태어날 아기를 미리 디자인(편집)하여 목적에 부합하는 인간을 만든다는 뜻이다. 이미 완성된 인간의 게놈 지도를 참고하여 특정 유전자를 바꿔 새로운 형질을 넣어주는 방법이다. 보통 부모에게 치명적 유전 질환이 있을 경우에 시도된다. 아니면 태어날 아기의 특수능력을 목적으로 하여 관련 유전자를 변형시킬 수도 있다. 이른바 머리 좋은 아기, 잘생긴 아기 눈이 파란 아기, 머리카락이 금발인 아기 등등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방법은 수정란을 채취하여 혹은 체외수정란에 특정 효소를 사용해 변이가 일어난 결함유전자를 잘라내고 정상유전자로 치환(대체)하는 것으로, 요즘 뜨고 있는 ‘유전자가위’ 혹은 ‘크리스퍼(CRISPR)’라고 불리는 실험기법이다. 얼마 전 중국에서 에이즈와 관련한 유전자를 편집하여 에이즈에 걸리지 않는 아이를 출산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해당 연구자 윤리적 문제로 몰매를 맞고 있다.

인간 배아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주입하고 있는 모습. 이 유전자 가위는 한국 기초과학연구원이 만들었지만 실험은 미국에서 진행됐다. 국내에선 인간 배아 유전자 교정이 허용되지 않아서다. [사진 미 오리건보건과학대]

인간 배아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주입하고 있는 모습. 이 유전자 가위는 한국 기초과학연구원이 만들었지만 실험은 미국에서 진행됐다. 국내에선 인간 배아 유전자 교정이 허용되지 않아서다. [사진 미 오리건보건과학대]

얼마 전 세상을 놀라게 한 뉴스다. 새로 태어난 아기에 엄마가 둘이라고 했다. 난자에 유전적 결함이 있는 여성이 유전자 조작을 가해 정상아기를 얻은 경우다. 난자 속 염색체유전자는 정상이더라도 그 속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에 이상(변이)이 생기면 각종 유전 질환이 발생하여 치명적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타인의 정상 난자를 빌려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만을 바꿔치기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새로 태어난 아기는 친엄마와 아빠의 염색체 유전자에다 제공받은 타인 난자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갖게 된다. 이런 경우 유전적 유산인 핵을 물려준 쪽이 진정한 부모일 텐데, 인간이기를 특정 짓는 형질하고는 관계없는 조그마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제공한 쪽도 엄마라 할 수 있을까. 참 판단이 어려운 부분이다.

쇼킹한 일도 벌어졌다. 시험관에서 정자도 난자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시험관 배우자 형성’이라는 기술이다. 체세포를 생식세포로 변환시킨 뒤 인공정자와 인공 난자로 성장시켜 수정하게 한 후 이를 자궁 안에 착상시켜 출산하는 방식이다.

본인의 세포 2개로도 가능하고 타인의 것도 상관없다. 불임 남편의 체세포로도, 동성 커플도 아기를 가질 수 있다. 홀로된 여성이 죽은 남편이 사용했던 빗으로부터 머리카락 세포를 채취해 아기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윤리적으로 금지되어 있어 실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기술적으로는 완성단계에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비윤리적인 기술을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하루빨리 윤리강령을 만들어 인간의 원초적 금기에 도전하는 무모한 짓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래도 누군가의 반칙이 두렵다. 이러다 혹시 프랑켄슈타인이 태어날지도.

이태호 부산대 명예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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