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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재의 전쟁과 평화

이땅에서 군인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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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철재 기자 중앙일보 국방선임기자 겸 군사안보연구소장
이철재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이철재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국방부와 합참이 있는 삼각지를 취재하다 보면 가끔 전역행사에 초대받는다. 전역을 앞둔 군인이 주변 사람들을 초대해 식사하면서 덕담을 나누는 자리다. 그런데 식순엔 없지만, 전역행사라면 빠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오히려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전역자가 소감을 밝히는 순서에서다. 그동안 군 생활을 떠올리며 감정에 북받치게 된다. 그러다 마지막에 가족들을 불러일으켜 세운다. 그리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앞으로 평생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다짐한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우렁찬 박수 소리는 진실하게 들린다. 군인의 가족으로 산다는 게 녹록치 않다는 점을 다들 잘 알기 때문이다.

군인은 근무지를 자주 옮긴다. 이순진 전 합참의장의 경우 42년 군 복무 중 45번 이사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 얘길 듣고 깜짝 놀랄 정도다. 잦은 이사 때문에 군인의 자녀가 친구를 사귀기가 쉽지 않다. 새 학기가 되면 삼각지 주변에서 한숨 소리가 크다. 새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어 해 하는 자녀 걱정이 원인이다.

한 장성의 사연이다. 그의 부인은 서울서 나고 자랐다. 신혼 때 군인인 남편을 따라 태어나서 처음 벽지에서 살게 됐다. 가도 가도 민가를 찾을 수 없는 산길이 나오자, 이삿짐을 싣고 가는 트럭 안에서 부인이 말없이 펑펑 울었다. 그랬던 부인이 요즘 남편에게 “서울은 너무 복잡하다”고 말한다. 그 장성은 “큰 빚을 졌다”며 부인에게 고마워한다.

지금이야 좋아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녹물이 나오고 쥐가 다니는 군인 관사가 많았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군인의 가족은 군인인 아버지·어머니·남편·부인에게 불평하지 않는다. 군인이 박봉에 툭하면 야근이면서도 쉬는 날이 적지만 말이다. 다만 군인의 가족은 군인이 무사히 국가를 지키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달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이때만 되면 군인에게 감사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진다. 군인의 뒤엔 늘 그를 걱정하고 보살피는 군인의 가족이 있다. 그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뜻을 보낸다.

이철재 국제외교안보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