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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설영의 일본 속으로] "명분없는 전쟁" 조선에 투항한 '사야카', 일본서도 기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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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투항한 왜군의 장수 사야카는 김충선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사진=한일우호관(녹동서원) 제공]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투항한 왜군의 장수 사야카는 김충선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사진=한일우호관(녹동서원) 제공]

1592년 4월 13일.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의 우선봉장 사야카(沙也可)는 군사 3000명을 이끌고 부산에 상륙한다. 일본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조선 침략을 명령했다. 임진왜란 초반 왜군은 연전 연승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사흘이 되도록 사야카의 군사는 움직임이 없었다. 일주일이 되던 날, 경상 병마절도사 박진에게 사야카의 편지가 도착한다.

9년 전 와카야마에 기념비 건립 #자민당 실세 니카이가 비문 써 #"배신자 아닌 전쟁 맞선 평화주의자" #

“이 전쟁은 대의명분이 없다. 조선에 투항하겠다”

사야카는 적진인 조선의 편에 섰다. 평소 ‘예의의 나라’ 조선을 흠모했다고 한다. 그는 조총과 화약 만드는 법을 조선군에 전수한다. 이후 공적을 인정받아 김충선(金忠善)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그는 정묘호란, 병자호란에도 참전해 72세로 사망할 때까지 조선인으로 살았다.

임진왜란 당시 조국을 등지고 조선의 편에 섰던 왜군 장수 사야카. 그의 공적을 기리는 비석이 일본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난 5일 와카야마(和歌山)현으로 향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오사카에서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약 90㎞. 사야카의 비는 와카야마시 기슈도쇼구(紀州東照宮) 경내에 있었다. 도쇼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를 기리는 신사로, 기슈는 와카야마 지방의 옛 이름이다. 도요토미 집안을 무너뜨린 이에야스의 신사 앞에 사야카의 비를 세운 건 절묘한 장소 선택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기슈도쇼구의 관리자인 니시카와 히데히로(西川秀大)는 “기슈 지역은 예부터 한반도의 영향을 많이 받아 한반도의 것과 똑같은 유물도 출토된다”면서 “닛코(日光)에 있는 도쇼구가 금색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것과 달리, 기슈도쇼구는 녹색과 붉은색을 주로 사용한 조선의 단청과 매우 닮았다”고 설명했다.

사야카의 비가 한반도와 연관이 깊은 기슈도쇼구 앞에 세워진 건 필연이라는 말처럼 들렸다.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시에 있는 기슈도쇼구(紀州東照宮). 닛코(日光)에 있는 도쇼구가 금색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것과 달리, 붉은색과 녹색을 주로 이용한 단청이 한반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윤설영 특파원.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시에 있는 기슈도쇼구(紀州東照宮). 닛코(日光)에 있는 도쇼구가 금색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것과 달리, 붉은색과 녹색을 주로 이용한 단청이 한반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윤설영 특파원.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시에 있는 기슈도쇼구(紀州東照宮). 닛코(日光)에 있는 도쇼구가 금색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것과 달리, 붉은색과 녹색을 주로 이용한 단청이 한반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윤설영 특파원.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시에 있는 기슈도쇼구(紀州東照宮)의 관리자 니시카와 히데히로(西川秀大). 윤설영 특파원.

비석이 세워진 것은 2010년이다. 당시 ‘사야카 한·일 국제심포지엄’이 일본에서 열린 것을 기념해, 뜻 있는 양국 국민이 모였다. 사야카를 소재로 한 소설 ‘바다의 가야금’을 쓴 작가 고사카 지로(神坂次郞), 김충선의 후손 등이 모였다.

여기엔 자민당의 유력 정치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당시 총무회장(현 간사장)도 있었다. 비문도 니카이가 직접 썼다. 돌은 아시아나항공 박삼구 회장에게 부탁해 한국에서 직접 가져왔다. 와카야마를 정치 기반으로 하는 니카이는 사야카가 와카야마 출신이라는 점을 앞장서서 알렸다. 지난 2월엔 ‘절친’인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와카야마를 찾았을 때, 사야카 비를 방문했다.

와카야마(和歌山)현 기슈도쇼구(紀州東照宮) 경내에 세워진 사야카 기념 비석. 전면에 '사야카 현창(공적을 밝혀 알림)비'라 쓰여진 비문은 자민당의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이 직접 썼다. 윤설영 특파원.

와카야마(和歌山)현 기슈도쇼구(紀州東照宮) 경내에 세워진 사야카 기념 비석. 전면에 '사야카 현창(공적을 밝혀 알림)비'라 쓰여진 비문은 자민당의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이 직접 썼다. 윤설영 특파원.

비석 앞에는 나무 두 그루가 서로 몸을 꼬듯 얽혀 자라고 있다. 당시 비 건립 상황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일부러 이곳으로 정한 것도 아닌데, 서로 기대듯 얽혀있는 나무 모습이 한·일관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했다.

일본에선 처음엔 사야카를 실존 인물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부정적으로 인식해왔다. 그러다가 사야카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1971년 국민작가로 불리는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가 쓴 기행문에서 사야카를 다루면서다. ‘배신자’ 프레임에서 ‘대의 없는 전쟁에 맞선 평화주의자’로 사야카를 재해석하기 시작한 것도 이 이후다.

와카야마(和歌山)현 기슈도쇼구(紀州東照宮) 경내에 세워진 사야카 기념 비석. 비석이 세워졌을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일부러 이 곳을 택한 것도 아닌데, 비석 앞에 나무 두 그루가 서로 얽혀있는 모습이 마치 한일관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설영 특파원.

와카야마(和歌山)현 기슈도쇼구(紀州東照宮) 경내에 세워진 사야카 기념 비석. 비석이 세워졌을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일부러 이 곳을 택한 것도 아닌데, 비석 앞에 나무 두 그루가 서로 얽혀있는 모습이 마치 한일관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설영 특파원.

와카야마현청 국제과의 야마시타 요시오(山下善夫) 국제기획반장은 “사야카의 스토리는 영화화 얘기도 나왔을 만큼 많은 일본인이 용기 있는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야카에 대한 기록은 일본에 남아있지 않다. 조국을 배신한 사실이 밝혀질 경우, 남은 가족들이 곤경에 처할 것을 우려해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다만 그가 조총과 대포를 잘 다뤘기 때문에 당시 와카야마 지역 철포부대로 이름을 떨쳤던 사이카(雑賀) 부대를 이끌었던 스즈키 마고이치(鈴木孫市)의 후손이 사야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와카야마(和歌山)현 기슈도쇼구(紀州東照宮) 경내에 세워진 사야카 기념 비석. '사이카ㆍ사야카로 지역을 활성화하는 모임’의 쓰지 다케시 회장이 사야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와카야마(和歌山)현 기슈도쇼구(紀州東照宮) 경내에 세워진 사야카 기념 비석. '사이카ㆍ사야카로 지역을 활성화하는 모임’의 쓰지 다케시 회장이 사야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사이카·사야카로 지역을 활성화하는 모임’의 쓰지 다케시(辻健) 회장은 "특히 죄 없는 민중을 잔혹하게 죽이는 것으로 도요토미는 유명했다"며 "사야카는 도요토미가 전쟁을 벌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목숨을 건 배신이나 다름없는 귀화를 한 건 강한 신념과 결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당시 조선으로서도 그를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언제 또 배신할지 모르는 적군의 장수에게 이름과 벼슬까지 내린 것은 통 큰 결정이었다. 쓰지 회장은 “이순신의 함대에 왜군은 모두 전멸했다. 사야카가 아니었더라도 임진왜란의 결과가 달라지진 않았겠지만, 다만 조총과 대포 덕분에 조선인의 희생을 줄였다고는 생각한다”고 말했다.

와카야마(和歌山)현 기슈도쇼구(紀州東照宮) 경내에 있는 '사야카 현창비'의 옆면엔 사야카(김충선)의 후손들이 쓴 비문이 새겨져 있다. 윤설영 특파원.

와카야마(和歌山)현 기슈도쇼구(紀州東照宮) 경내에 있는 '사야카 현창비'의 옆면엔 사야카(김충선)의 후손들이 쓴 비문이 새겨져 있다. 윤설영 특파원.

2000년대 한·일관계가 급격하게 개선되면서 사야카는 이른바 ‘한·일 우호 협력의 아이콘’으로 다뤄졌다. 관련 연구도 활발했다. 2012년엔 사야카가 세운 녹동서원이 있는 대구시 달성군에 한일우호관도 개관했다. 일본에선 지금도 쓰지 회장을 중심으로 매년 사야카를 주제로 한 낭독극회를 열고, 초ㆍ중학생을 대상으로 사야카의 평화사상 등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쓰지 회장은 "한·일 관계에 항상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며 "지금은 강제징용 문제 등 여러 어려운 일이 얽혀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한 번쯤 사야카비를 찾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와카야마=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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