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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만 아름다운 이별...수영장 사고 12세, 또래에 장기기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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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 3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난 이기백 군 [한국장기조직기증원]

또래 3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난 이기백 군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수영장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 뒤 100일 넘게 의식 불명 상태로 사투를 벌여온 12세 소년이 또래 3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났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7일 “12살의 어린 꿈나무 이기백 군이 지난 5일 간장과 양쪽 신장을 기증해 어린이 환자 3명을 살리고 하늘의 별이 됐다”고 밝혔다.
이 군은 지난 2월 부산의 한 호텔 수영장에서 팔이 사다리 계단에 끼는 사고를 당했다. 12분만에 구조됐지만 의식을 잃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다. 이 군은 100일 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숨졌다. 이 군은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일로 다른 사람을 살리게 됐다.

2007년 부산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이기백 군은 착한 심성으로 애교가 많고 교우관계가 좋았다. 부모님과 주변 사람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였다. 한 살 터울인 누나와도 사이가 좋아 친구처럼 자랐다. 이 군은 예정대로라면 올 3월에 중학교에 입학해야 했다. 사고 전 미리 사둔 교복을 한번 입어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나게 됐다.

이군의 부모는 사고 이후 100일 동안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에서 점점 악화되어 가는 아들을 보며 이대로 보내는 것보다는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했고, 장기기증을 결심했다. 가족들에게 12살의 어린 기백이를 떠나보내는 건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군  어머니는 “아들의 장기를 기증을 하는 것도 무섭고 두려운 일이지만 ,이대로 기백이가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어지이 사라지는 것은 더 무서운 일”이다 “100일 동안이나 기다려준 기백이가 어디선가 살아 숨 쉬길 희망하면서 기증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실려갔던 기백이가 다시 심장이 뛰고 100일이나 살아준 건 가족들을 너무 사랑해서 떠나기 싫어 그랬던 것 같다. 평소에 너무나 착하고 마음이 고왔던 기백이가 우리가 이런 선택(장기기증)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버텨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군의 단짝친구는 “예전에 기백이가 우리 집에 놀러왔을 때 같이 장기 기증에 대한 방송을 보면서 ‘우리도 나중에 다른 사람을 위해 꼭 장기기증을 하자’고 다짐했는데, 기백이가 먼저 그 약속을 지켰다”며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이 군의 어머니는 아들을 떠나보내며 오열했다. “내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맙다. 키우는 동안 엄마를 웃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준 고마운 아들아, 끝까지 훌륭한 일을 해줘서 자랑스럽다. 언제나 사랑하고 하늘나라에서 행복해라.”

이 군 가족들은 어린 아이들이 어른들의 안전 불감증으로 인해 아픔과 고통 속에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은 슬픈 일이지만, 이런 사실이 많이 알려져 앞으로는 다른 누구도 이런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조원현 원장은 “온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이기백군이 세상에 마지막 선물을 주고 떠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기백 군으로부터 생명을 선물 받은 분들이 건강하게 살아서 그 소년의 몫까지 우리 사회에 선물 같은 일을 하며 살아가길 바라고, 기증을 결정 해주신 가족분들께도 존경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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