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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정년 연장, 표 계산 만으로 서두를 일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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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정년 연장 논의를 본격화했다. 홍남기 부총리는 2일 “인구구조 변화로 볼 때 정년 연장 문제를 사회적으로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며 “인구구조 개선 대응 TF에서 정년 연장 문제를 집중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대법원이 육체노동자로 일할 수 있는 최고 연령을 기존의 만 60세에서 65세로 올려 판결하면서 불 붙은 정년 연장 논쟁을 공론화해 이번 기회에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겠다는 의도다.

일할 인구 급감 속 늦추기 어려운 사안이지만 #일본 반면교사로 청년실업 등 함께 고민해야

출생 절벽과 급속한 고령화 탓에 국내 노동시장에선 이미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통계청은 이들 경제 주축 인구가 2029년까지 연평균 32만5000명씩 줄어든다는 전망치를 내놓았다. 이대로 가다간 소득과 소비가 꺾이고 복지 비용은 늘어 경제성장률을 갉아먹을 수밖에 없다. 정년 연장은 이 같은 큰 흐름 속에서 더 이상 늦추기 어려운 시급한 사안이다. 당장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면 노년 부양비 증가 속도가 9년 늦춰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문제는 처한 입장에 따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려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가뜩이나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란 우려다. 홍 부총리는 “앞으로 10년간 베이비부머 세대(1955~63)가 연 80만 명 떠나고, 젊은 세대(지금의 10대)는 40만 명 들어오는 걸 고려하면 이런 우려는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보다 앞서 청년실업 문제를 겪었던 일본을 보면 이런 단순한 셈법에 허점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일본에선 취업 빙하기인 1993~2004년 사회 진출 세대를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고 한다. 일괄적인 대졸 공채와 연공서열 등 일본 특유의 노사 관행 탓에 졸업 직후 제대로 취업하지 못한 이 세대는 일본이 호황을 맞은 지금까지도 경제적으로 만회를 하지 못했다. 아사히신문은 40~64세의 중장년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는 현재 61만여 명으로, 사회 전반의 구인난 속에서도 여전히 국가에 짐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3년 정년 연장(65세)으로 노인까지 일하는 와중에도 출발을 제대로 하지 못한 세대는 계속 뒤처진 삶을 사는 셈이다. 유연하지 못한 노동시장 등 일본과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는 우리로선 지금의 청년실업 문제가 단순한 세대갈등을 넘어 두고두고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는 만큼 정년 연장과 별개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연금과 관련한 사회적 불만을 어떻게 잠재울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연금 의무가입 연령과 연금 수급개시 연령을 각각 5년과 3년씩 늦춰 65세까지 납부하고 68세부터 받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다. 당시 반발이 거세자 복지부 장관이 최종안이 아니라며 겨우 수습했다. 하지만 정년 연장은 더 오래 내고 더 늦게 받는 연금개혁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눈앞의 표 대신 국가 미래를 위해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는 얘기다. 또 저소득층일수록 실질적인 정년 연장과 연금 개시 사이에 크레바스가 더욱 깊어질 우려도 있는 만큼 이런 사각지대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연공서열형 임금구조나 비탄력적인 고용시장을 그대로 둔 채 정년만 연장하면 기업도 감당하기 어렵다. 정년 연장 논의를 제대로 하려면 이 같은 고용 구조 역시 먼저 뜯어고쳐야 한다. 정부의 의도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대신 사회적 논의를 통해 합리적인 절충안을 점검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