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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골퍼 비하 가장 큰 복수···이정은6 US오픈 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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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컵에 입을 맞추는 이정은6. [사진 JTBC골프]

우승컵에 입을 맞추는 이정은6. [사진 JTBC골프]

골프 공에 그려진 빨간색 6이라는 숫자가 유달리 빛났다.

‘럭키식스’, ‘핫식스’라는 별명의 이정은6이 3일(한국시간)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컨트리 클럽 오브 찰스턴에서 끝난 US여자오픈 최종라운드에서 1언더파 70타를 쳐 합계 6언더파 278타로 역전 우승했다. 유소연, 렉시 톰슨, 엔젤 인이 4언더파 공동 2위다.

한국인으로서는 열 번째 US오픈 우승이다. 여자 골프 최강국인 한국은 1998년 박세리를 시작으로, 김주연(2005), 박인비(2008), 지은희(2009), 유소연(2011), 최나연(2012), 박인비(2013), 전인지(2015), 박성현(2017)이 US오픈에서 우승했다.

LPGA 투어 신인 이정은6은 첫 우승을 메이저대회로 장식했다. 이정은은 우승 상금 100만 달러를 받고 신인왕 경쟁에서 사실상 1위를 확정했다.

대회 직전 미국에서 터진 한국여자 골퍼, 특히 이름에 숫자를 쓰는 이정은6에 대한 비하 논란 속에 얻은 우승이라 더 의미가 크다.

선두에 2타 차 6위로 경기를 시작한 이정은6은 전반을 이븐파로 마쳤다. 10번 홀에서 아이언샷이 그린을 맞고 튕겨 나가 버리면서 위기를 맞았다. 딱딱하고 빠르고, 경사가 심한 포대 그린이어서 파 세이브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이정은6은 면도날처럼 정교한 칩샷을 했다. 공은 핀 가운데에 맞고 홀 옆에 멈춰서 파세이브를 했다.

이어진 파 3인 11번 홀은 이 골프장에서 가장 어려운 홀이다. 약 4m 정도의 높은 곳에 그린이 자리 잡고 있다. 티잉그라운드에서 봤을 때 그린의 앞과 왼쪽이 높아 공을 세우기 어렵다. 왼쪽에는 3.3m 깊이, 오른쪽에는 2.1m 깊이의 벙커가 있다. 그린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벙커에 빠졌다가는 벙커에서 벙커로 오가는 ‘온탕 냉탕’을 경험할 수도 있다.

핀은 왼쪽 구석에 있었다. 이정은의 티샷은 약간 당긴 듯했다. 그린을 벗어나면 3m가 넘는 벙커에 빠진다. 운이 좋았다. 공은 그린 프린지에 맞고 속도가 줄었고 홀 쪽으로 굴러 내려왔다. 이정은6은 2.5m 버디 퍼트를 홀에 넣었다. 기세가 오른 이정은은 다음 홀에서도 벙커 바로 뒤에 있는 핀을 공략해 버디를 잡아냈다. 파 5인 15번 홀에서 다시 버디를 잡아내 3타 차 선두로 올라섰다.

사자의 입이라는 별명이 붙은 16번 홀과 마지막 홀에서 보기를 했지만, 우승에는 지장이 없었다.

이정은은 시상식장에서 "마지막에 긴장해서 보기 2개를 했다. 그러나 전반 샷감이 좋아 점수를 줄여놔 우승할 수 있었다. 첫 홀에서 보기를 했는데 마무리를 잘해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첫 홀 보기를 한 것이 오히려 도움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정은은 또 "이전에 우승한 그 어떤 대회와도 느낌이 다르다. 그동안 골프를 한 게 생각나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통역을 하는 매니저도 울음을 참지 못했다.

박성현이 1언더파 공동 12위, 박인비와 김세영, 고진영이 이븐파 공동 16위를 기록했다.

이번 US여자오픈은 대회 직전 터진 한국 여자 골퍼 비하 발언으로 뜨거웠다. 타이거 우즈의 전 코치인 행크 헤이니는 지난 29일(현지시간) 자신의 PGA투어 라디오에서 US여자오픈에 관한 전망을 얘기하면서 “US여자오픈에 베팅한다면 한국인에 걸겠다. 누구인지는 말할 수 없다. LPGA 투어에 여섯 명 정도?”라고 했다가 “아니다.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씨다. 성은 말할 수 있더라도 이름은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이름에 숫자를 붙인다는 한국 여자 골프 비하 발언 타깃이 됐던 이정은6. [AP]

이름에 숫자를 붙인다는 한국 여자 골프 비하 발언 타깃이 됐던 이정은6. [AP]

함께 방송한 스티브 존슨은 “(한국 여자골퍼들은) 이름이 똑같아서 이름에 번호를 붙이기도 한다. 이씨가 많아서 1번, 2번, 3번식으로 번호를 붙인다. 그 중 한 명이 리더보드에 올라왔고 이름이 이씨 6번이었다”고 했다.

미셸 위 등이 인종, 여성 비하 발언이라 반발했고, 헤이니는 방송 출연 정지를 당했다. 타이거 우즈는 “징계를 받을 만 하다”고 했다.

행크 헤이니의 발언은 이름에 6자를 붙이는 이정은6이 주된 타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정은6은 우승으로 가장 멋진 복수를 했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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