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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뉴스]소리를 글로 바꿔주는 착한 AI…청각장애인도 바리스타·플로리스트 교육 쉽게

중앙일보

입력

“단단한 머리카락에 파마 약을 발라서 부드럽게 만들어주고요. 롯드를 이용해 모양을 잡아주고, 중화제를 뿌려 산화시켜주면 머리를 감아도 몇 달 동안 컬이 유지될 수 있어요.”

강현미 씨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커다란 프로젝터 스크린에 곧장 글자로 수놓였다. 강 씨는 한국잡월드 청소년체험관에서 미용 과정을 강의하는 강사다. 강 씨의 강연 중 ‘롯드’나 ‘중화제’ 등 미용 용어도 어려움 없이 문자로 변환됐다. 전문 용어를 학습한 인공지능(AI) ‘쉐어톡’ 덕이다. ‘펌’이나 ‘파마’도 발음이 비슷한 ‘농장(farm)’이나 ‘제약(pharma)’으로 오역되지 않았다.

지난달 31일 오후 3시 경기 성남시 분당 한국잡월드에서는 SK㈜ C&C와 사회적협동조합 에이유디(AUD)가 개발한 소리를 보여주는 AI ‘쉐어톡’의 시연회와 협정식 ‘디지털 동행 쉐어톡 얼라이언스’가 열렸다. 쉐어톡은 청각장애인 직업 훈련용 AI 문자통역서비스다. 카카오톡처럼 강사가 수강생들을 초대해 방을 만든 후, 블루투스 마이크나 스마트폰에 대고 강의하면 강연 소리가 앱이나 PC 화면에 문자로 바뀌어 뜬다. 미용사·바리스타 등 전문용어가 많은 강의도 전문 지식과 맥락을 미리 배워둔 AI가 오역 없이 변환한다.

쉐어톡 앱 실행 화면. 글자크기 조정도 가능하다. [사진 SK C&C]

쉐어톡 앱 실행 화면. 글자크기 조정도 가능하다. [사진 SK C&C]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청각장애인 인구는 약 34만 명이다. 교육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은 직업을 갖고 싶어도 의사소통이 어려워 정보 격차를 경험하고, 그로 인한 고용격차에 좌절의 악순환을 겪는다. 이들에게 취업 교육의 희망을 주는 것이 AUD 박원진 이사장과 SK㈜ C&C의 목표다.

에이유디(AUD) 사회적협동조합 박원진 이사장이 31일 한국잡월드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SK C&C]

에이유디(AUD) 사회적협동조합 박원진 이사장이 31일 한국잡월드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SK C&C]

속기사 없어도 AI가 강연을 문자로 

본인이 2급 청각장애인이자 제주 영송학교(사립 지적장애인 특수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적이 있는 박원진 AUD 이사장은 지난달 3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강의를 문자로 보여준다면 저 같은 청각장애인들이 접근하는 데 어려움이 줄어들 것”이라고 쉐어톡 제작 의도를 전했다. 그는 “평상시에 잘 쓰지 않는 전문용어도 쉐어톡 AI에 계속 학습시키면 인식률이 점점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쉐어톡은 2014년부터 AUD가 시작한 ‘쉐어타이핑’ 사업에 SK㈜ C&C의 AI 음성 문자 전환 솔루션 ‘에이브릴(SK㈜의 AI 플랫폼) 스피치 캐치’를 적용한 것이다. 쉐어타이핑은 청각장애인 직업학교에 파견된 속기사(문자통역사)들이 강의를 실시간으로 타이핑해 보여주는 사업이다. 그러나 속기사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 앞에 지난해부터 SK㈜ C&C와 함께 쉐어톡 개발·운영에 나섰다.

31일 한국잡월드에서 열린 '디지털 동행 쉐어톡 얼라이언스'에서 박원진 AUD 이사장, 정정식 장애인고용공단 이사, 안정옥 SK(주) C&C 사업대표(사장), 이상진 한국복지대학교 총장, 노경란 한국잡월드 이사장이 '미니 포럼'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민 기자

31일 한국잡월드에서 열린 '디지털 동행 쉐어톡 얼라이언스'에서 박원진 AUD 이사장, 정정식 장애인고용공단 이사, 안정옥 SK(주) C&C 사업대표(사장), 이상진 한국복지대학교 총장, 노경란 한국잡월드 이사장이 '미니 포럼'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민 기자

비슷한 음성-문자 변환 소프트웨어로 아이폰 시리(Siri)의 음성인식 엔진을 공급하는 뉘앙스커뮤니케이션즈의 ‘드래곤’, 구글의 ‘실시간 자막(Live Transcribe)’ 등이 있지만, 장애인 직업훈련용 전문서비스는 쉐어톡이 최초다. 쉐어톡의 강의 파일은 자동 저장돼 복습할 수도 있고, 실시간 채팅으로 강사에게 질문하는 것도 가능하다. 단 전문 서비스이기 때문에 구글스토어나 앱스토어에서 다운받을 수는 없다. 대신 AUD가 기관별로 다운로드 주소(URL)를 제공한다.

잘 안들렸던 전시회 도슨트 해설에도 응용 가능  

쉐어톡은 앞으로 각종 장애인 직업 교육뿐 아니라 국내 75세 이상 노인 50% 이상이 겪는 노인성 난청 등을 고려해 박물관·전시회 등 문화 공간 도슨트 서비스로도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SK㈜ C&C 관계자는 “한 전문 분야를 AI에 학습시키는 데는 2주 정도의 짧은 시간만 소요된다”며 “앞으로 여러 분야, 여러 기관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 한국잡월드에서 열린 ‘디지털 동행 쉐어톡 얼라이언스’ 출범식에 참가한 한국잡월드 노경란 이사장(앞줄 왼쪽 첫번째), 김학용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앞줄 왼쪽 네번째), 분당 지역구 김병욱 의원(앞줄 오른쪽 세번째), SK㈜ C&C 안정옥 사업대표(두번째 줄 왼쪽 네번째), AUD 사회적협동조합 박원진 이사장(두번째줄 오른쪽 네번째) 등 [사진 SK C&C]

지난달 31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 한국잡월드에서 열린 ‘디지털 동행 쉐어톡 얼라이언스’ 출범식에 참가한 한국잡월드 노경란 이사장(앞줄 왼쪽 첫번째), 김학용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앞줄 왼쪽 네번째), 분당 지역구 김병욱 의원(앞줄 오른쪽 세번째), SK㈜ C&C 안정옥 사업대표(두번째 줄 왼쪽 네번째), AUD 사회적협동조합 박원진 이사장(두번째줄 오른쪽 네번째) 등 [사진 SK C&C]

쉐어톡은 현재 시범 적용을 마친 바리스타 과정 외에 한국잡월드 3대 어린이 인기 직업인 미용사·플로리스트·로봇 기술자 과정을 지원한다. 이날 행사에서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서대문농아인복지관·서울시교육청 특수교육지원센터 등 20여 개 기관이 쉐어톡 적용과 AI 전문 용어 학습을 위한 강의 녹취 데이터 제공을 위한 협정을 맺었다.

SK C&C와 사회적협동조합 AUD가 함께하는 인공지능(AI) 문자통역서비스 '쉐어톡' 협정을 맺은 20여개 기관들 명단 [자료 SK C&C]

SK C&C와 사회적협동조합 AUD가 함께하는 인공지능(AI) 문자통역서비스 '쉐어톡' 협정을 맺은 20여개 기관들 명단 [자료 SK C&C]

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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