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황토물 도시"…공포의 밤샘|전기 끊겨 양초 동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광주·전남=임시취재반】하늘이 뚫린 듯했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거대한 폭포수를 연상케 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것이라곤 시커멓게 찌푸린 하늘과 넘실대는 황토물 뿐이었다. 알찬 결실을 잉태하던 푸른 들판은 거대한 황토물의 바다로 변했고 들판을 가로지르던 철길과 국도는 황토물의 바다 속으로 잦아들고 말았다.
나주지방의 4백32mm를 비롯, 25일 하룻동안 전남지방에 쏟아진 3백∼4백mm의 집중호우는 1939년 광주 측후소가 생긴 이후 최대의 홍수였으며 영산강이 60년만에 처음으로 범람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2만4천여 장성읍민들은 가재도구들을 미처 챙기지도 못한 채 고지대로 대피, 넋을 잃고 칠흑같은 밤을 맞았다.
빗줄기는 약해졌지만 수마에 할퀸 장성읍은 밤이 되면서 한전측이 25일 오전11시부터 감전 등의 사고에 대비해 전기공급마저 끊어버리는 바람에 암흑의 세계로 변했고 침수피해를 면한 몇몇 가게의 양초나 건전지가 동났다.
장성읍 성산국민학교에 모인 1백50여 가구 6백여명의 주민들은 밤의 한기를 쫓기 위해 비닐조각을 잘라 몸에 감고 교실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새우잠을 청했다.
26일 아침이 밝자 수마가 할퀴고 간 시가지 곳곳에는 온갖 잡초와 나뭇가지·쓰레기가 진흙에 엉겨붙어 물이 빠진 저수지 밑바닥을 방불케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