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멍에」벗기 배수진|「친서 설」계기로 농성 돌입한 평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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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 평민당총재의 대북 친서전달 설을 계기로 서 의원 사건이후 줄곧 몰리는 입장에만 처해 있던 평민 당이 물실호기 대반격에 나셨다. 25일 당무지도합동회의를 통해 장외투쟁불사방침을 공식천명하고 나서는가 하면 총리를 찾아가 직접 항의하고 의원 및 당직자전원이 무기한 농성에 돌입하는 등 실력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평민당의 이 같은 강성대응에도 불구하고 김 총재에 대한 당국의 조사방침은 좀처럼 철회할 기색이 보이지 않아 평민 당과 안기부간의 정면대결은 당분간 소강 상태 속에서 막후대화로 전기를 모색하는 냉각기를 맞고 있다.
친 서설을 문제삼는 평민당의 공세에 대해 민정 당은 이사안과 김대중총재조사와는 별개라는 입장이다. 민정 당은 아울러 공안당국관계자(안응모 1차장)의 해명처럼 친 서설은 안기부에서 나온 것이 아니므로 정부·여당은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민정 당은 평민 당에 대해 ▲친서 설과 관련된 오해를 풀고 ▲김 총재가 안기부의 참고인조사에 응해 서 의원 사건을 매듭짓자고 요구하고 있다.
민정당 관계자들은 ▲친 서설은 어디까지나 수사당국이 김 총재에 대해 상정한 여러 가지 혐의점 중에 하나일 뿐이며 ▲따라서 설이「원인 모르게」흘러나와 문제가 됐다 고해서 이를 공식 이슈화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종찬 사무총장은 26일『친 서설로 인해 서 의원 사건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혀 서 의원 사건과 친 서설의「분리」를 강조했다.
민정 당은 김 총재가 추진의사를 밝힌 노 대통령과의 단독회담도 친 서설이 계기가 돼서는 곤란하며 김 총재의 조사가 끝난 후에야 필요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다만 정부·여당은 김 총재에 대한 구인여부에 대해선 매우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민정당 측은 구인을 해서라도 조사를 강행해야 한다는 강경 론(공안당국)에 대해 정국긴장등 정치적 파문을 고려해야 한다는 신중론을 계속 주장하고 있다.
민정 당은 평민당의 농성사태 등 정국의 긴장상황과 평민 당 지지기반인 호남에 호우피해가 발생하는 등의 민감한 주변정황 속에서 김 총재를 구인 하는 것은 너무 자극적이라는 분석 하에 김 총재와 안기부사이에「타협적인」방법의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막후절충을 계속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평민 당은 농성투쟁을 시발로 일단 초 강경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친서전달 설 자체가 김 총재에 대한 구인분위기조성의 마지막단계라고 판단하고 차제에 아예 구인얘기는 꺼내지도 못하도록 강하게 밀어붙인다는 방침이다.
이날 당무지도합동회의가 채택한 대응 방법도 ▲대통령의 사과 및 안기부장 파면▲청문회개최▲발언자 처벌 등을 요구키로 하고 이와 함께 자신들의 최대장기이자 여권의 급소인 장외투쟁도 불사하겠다고 밝히면서「친서전달 설 조작 음모분쇄투쟁본부」란 것까지 만들어 당외 세력과의 연계투쟁 가능성마저 암시하고 있다.
평민 당은 최근의 노점상자 및 전교조의 가 투도 평민당의 장외투쟁분위기를 다져 주는 호재로 보고 있다.
그렇다고 평민 당이 여권과의 극한대결이 예상되는 막다른 골목까지 치닫겠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우선 평민 당으로서는 서의원 사건이란 엄청난 멍에가 씌워져 있고 장외투쟁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평민 당으로서는 무엇보다도 김 총재에 대한 안기부의 조사결행방침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구인을 해 올 경우 실력으로 저지한다는 내부방침을 수립해 놓았으나 구인 그 자체보다는『떳떳하다면 조사에 응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또 다른 여론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민 당은 2∼3일정도 정부·여당 측을 강하게 몰아세운 뒤 정부의 반응을 봐 가며 구체적 대책을 세울 작정이다.
그러나 안기부 측이 평민당의예상대로 순순히 응해 오지 않을 경우농성을 계속할지, 장외투쟁으로 나갈지 괴로운 선택에 봉착하게 된다.
평민당의 진짜 고민은 여권의 확실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는데 있기 때문에 강경 투쟁 속에 여권의 진의를 파악하는 노력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13대 국회 들어 첫 농성」을 기록한 평민당의 철야농성은 25일 오후 7시40분쯤 점퍼차림의 김대중 총재가 농성 장에 입장, 의원 및 당직자들과 함께『안기부를 해체하라』는 등의 열띤 구호를 제창함으로써 시작됐다.
구호가 끝난 뒤 김 총재는 30여분에 걸친 격려사를 통해『이 정권이 박정희·전두환 정권의 전철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노 대통령을 원색 비난.
김 총재는 이어『여권은 공안세력이 장악하고 있고 다른 야당들은 입을 봉하고 있다』며『우리가 망하면 자기들도 야당을 할 수 있을 것 같나』『우리가 쓰러지면 다음 차례가 누군가』등 특히 민주당 측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
농성 자들은 자정 무렵 다시 모여 2차로 구호제창 및 토론회를 가지면서 밤샘에 대비했는데 농성소식이 알려지자 당사에는 밤늦게까지 전국 지구당 및 지지자들로부터 격려전화가 쇄도. <이연홍·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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