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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태생적 한계 극복 못한 검찰과거사위의 18개월

중앙일보

입력

20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문준영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과거사위) 위원이 '장자연 사건' 관련 최종 심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문준영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과거사위) 위원이 '장자연 사건' 관련 최종 심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이번 주 용산참사 등에 대한 조사 결과를 최종 발표하고 오는 31일을 마지막으로 18개월간의 활동을 마무리한다. 당초 대검찰청 산하 과거사 진상조사단의 1차 활동 기간은 지난해 8월이었지만 4차례 연장하며 이어져 왔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수사권고 등 공이 있지만 과거사위와 조사단이 만들어질 때부터 제기됐던 논란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4차례 연장하며 1년 반…"공 있지만 부족" #갈등?편향성?자질 문제 모두 해결 못해 #과거 수사 지적하고도 처벌은 '0건'

과거사위-진상조사단 갈등에 위원장 사퇴까지 

과거사위는 법무부 산하에, 진상조사단은 대검 산하에 설치되며 나뉘어 활동해왔다. 과거사위는 재조사 사건을 선정하면 조사단이 이에 대해 조사해 과거사위에 보고하는 식이다. 과거사위는 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검찰에 수사를 권고할지를 결정했다. 조사의 독립성 논란이 야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역할을 나눈 것이지만 두 조직 사이에선 갈등이 빈번했다.

지난해 2월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김갑배 검찰 과거사위원회 위원장이 기자회견을 갖고 "위원회와 조사단이 분리돼있어 서로 소통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뉴스1]

지난해 2월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김갑배 검찰 과거사위원회 위원장이 기자회견을 갖고 "위원회와 조사단이 분리돼있어 서로 소통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뉴스1]

진상조사단에서 활동한 외부위원은 “과거사위가 최종 발표하는 보도자료 내용이 조사단이 낸 결론과 달라 문구 수정을 놓고 여러번 다퉜다”며 “외부위원이 상근직이 아닌데 조사단은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서울동부지검에 있고 위원회는 경기 과천 법무부에 있어 소통이 잘 안 됐다”고 했다. 과거사위 위원장인 김갑배 변호사는 지난해말 조사단과 갈등을 겪다가 사표를 내기도 했다. 사표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김 변호사는 5개월여간 사실상 위원장 활동을 하지 않았다.

민변 출신 편향성 논란, 경력·자질 부족 문제도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의 외부위원 선정 때부터 편향성과 자질 문제가 두드러졌다. 김 위원장을 비롯해 과거사위 발족 당시 위원 9명 중 6명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출신이다. 과거사위가 재조사 사건을 선정하기 전부터 편향성 논란이 일었고 실제로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 사건(2010년),'탈북간첩' 유우성씨 증거조작 사건(2012년), 김학의 전 차관 사건(2013년) 등 과거사위가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본 사건 상당수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검찰 수사에 대한 것이었다.

과거사위 선정 사건에 대해 조사를 진행한 진상조사단은 팀을 나눠 조사를 진행하면서 1개 팀을 검사 2명과 4명의 외부위원(변호사 2명‧법학 교수 2명)으로 구성했다. 과거 검찰 수사를 재조사해야 한다는 특성상 공정성을 위해 외부위원을 다수로 했지만 대다수 외부위원은 실무 경험이 거의 없어 팀 내 검사들에게 조사 주도권을 내줬다고 한다.

조사단 외부위원 위촉 요건을 개인사건 변론을 맡지 않는 변호사로 한정하다 보니 조사를 진행하기엔 역량이 다소 부족했다는 평가다. 진상조사단의 한 검사는 “재조사 대상 대다수가 특수‧강력사건인데 수사나 수사 단계에서의 변론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의혹이 있는 사람에 대한 강제소환이나 계좌추적 등 수사 권한이 없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고 덧붙였다. 진상조사 시작 전부터 어려움이 예상됐다는 것이다.

검사 처벌·징계는 없고 총장 사과에 그쳐

이런 상황에서 조사단의 재조사를 바탕으로 과거사위가 김 전 차관에 대한 수사를 권고해 수사단이 꾸려지는 등 성과를 내기도 했다. 수사단은 김 전 차관과 건설업자 윤중천씨를 구속했다. 또 서울중앙지검 조사2부는 과거사위 권고를 바탕으로 이른바 ‘남산 3억원 사건’과 관련해 라응찬 전 신한지주 회장 등 10명을 위증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조사단의 또 다른 검사는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애초 현실을 생각하면 이 정도 성과가 기적처럼 느껴진다"고 털어놨다.

문무일 검찰총장(왼쪽 두번째)이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만나 증언을 들으며 눈물을 닦고 있다. 문 총장은 ’검찰이 인권침해의 실상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해 불행한 상황이 발생한 점에 대해 마음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임현동 기자

문무일 검찰총장(왼쪽 두번째)이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만나 증언을 들으며 눈물을 닦고 있다. 문 총장은 ’검찰이 인권침해의 실상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해 불행한 상황이 발생한 점에 대해 마음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임현동 기자

하지만 과거 수사의 문제가 일정 부분 밝혀졌더라도 처벌로 이어지지 않아 ‘맹탕’이라는 지적을 피하긴 어렵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과거사위 권고로 ‘형제복지원 사건’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피해자를 찾아 사과하긴 했으나 그 이상의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내지 못 했다. 과거사위는 강기훈 유서 대필, 유우성 증거조작 사건 등에 대한 과거 검찰 수사에 문제가 있었다고 발표했으나 검찰총장의 사과와 제도 개선을 권고하는 데 그쳤다.

공소시효 등의 문제로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에 대한 처분 권고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검사징계법상 검사의 징계시효는 3년이고 재산상 이득을 취한 경우 5년까지 징계 처분이 가능하다. 직권남용 등 형사처벌의 경우에도 공소시효가 7년으로 그 이전에 있었던 일에 대한 처벌이 불가능하다. 당초 과거사위는 검찰 과오에 대해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묻기 위해 만들어졌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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