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쏙 빠진 대타협기구…승차공유 7년, 결국 이 모양

중앙일보

입력 2019.05.28 00:02

업데이트 2019.05.28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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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2017년 6월 외국의 한 정치 지도자가 이렇게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존 사업자와 스타트업 간 경쟁이 불가피하다. 누가 시대 변화와 소비자 니즈(Needs)를 충족할지는 시장이 판단한다. 공무원이 관행과 규정을 앞세워 기존 사업자를 보호해선 안 된다.”

[현장에서]
부처들 책임 회피하려 발 빼고
당사자들 이해 얽혀 무한충돌
‘선 허용 후 보완’ 중국만도 못해

시장경제가 고도로 발전한 나라 지도자가 했을 법한 이 말은 놀랍게도 중국 리커창(李克强) 총리 입에서 나왔다. 국무원 회의에서 신사업에 대한 ‘선 허용, 후 보완’ 원칙을 강조하면서였다.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승차공유로 돈을 벌 수 있는 ‘우버X’가 한국에 등장한 건 2013년이다. 그로부터 7년, 한국 사회는 승차공유 논란에서 한 발짝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는 한국 사회의 갈등 해결 방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이나 영국·중국처럼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이 고속으로 발전하고 있는 나라들이 취하는 ‘선 허용, 후 보완’ 같은 큰 원칙 없이 ‘선 타협, 후 입법’만 강조하는 현재의 문제 해결 방식으론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이익집단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당사자 간 절충점(합의안) 도출→합의안 바탕 국회 입법→행정력 발휘’의 해결 구조를 취해 왔다. 당사자끼리 타협하고 나면 맨 마지막에 행정력을 발휘하겠다는 방식이다. 사회적 대타협 기구 방식은 승차공유뿐 아니라 탄력근로제, 공무원 연금제도 개선 등을 위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작동 중이다.

절차상 허점이 없어 보이는 이런 문제 해결 방식은 사실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IT 전문가인 법무법인 린의 구태언 테크앤로 부문장(변호사)은 “대타협 기구를 만드는 순간 주무부처는 슬그머니 발을 뺄 수 있는 구도가 짜인다. 더구나 이해당사자 간에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 갈등이 무기한 방치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승차공유 사회적 대타협 기구의 논의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업계 관계자도 “대타협 기구에서 논의는 비생산적으로 진행되고 문제 해결은 장기화한다. 공무원들도 이를 잘 알지만 책임을 회피하기에 최적의 구조이니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대타협 기구에서 아무 결론을 내리지 못하면 신사업 등장이 지연되니 기존 산업 종사자들은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도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 대타협 기구를 통해 갈등 요인이 말끔히 해결된 사례는 찾기 힘들다.

택시업계 입장, 법인·개인 간 완전히 달라

승차공유 논란은 애당초 대타협기구 방식의 해법이 작동하기 어려운 문제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태언 부문장은 “정부는 택시업계와 승차공유업계 양측이 합의안을 만들고 이를 톱다운(Top down) 방식으로 실행해 양측이 잘 지키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봤지만, 이는 현장을 너무나도 모르는 소리”라고 지적했다. 택시업계만 해도 영업 활성화가 목표인 법인택시와 개인재산권 보호가 목표인 개인택시 간에 입장이 완전히 다르다. 승차공유 업계를 대표해 카카오모빌리티가 기구에 참여했지만 택시와 손잡고라도 영업을 시작하고 싶은 카카오모빌리티와, 택시 타는 것 자체가 싫은 손님들을 고객으로 끌려는 타다도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다. 실제 3월 7일 사회적 대타협기구는 ‘플랫폼 택시’ ‘기사 월급제’ 등을 해법으로 내놨지만 법인택시와 개인택시 모두 이에 반발했다. 복잡하고 다층적인 갈등 구조를 당사자끼리 합의하라고 맡겨 놓으니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갈등 방치가 장기화하면서 우리 사회는 불필요한 후유증도 앓고 있다. 27일엔 네이버 공동창업자였던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가 ‘웃기는 짬뽕’ 같은 원색적 표현으로 이재웅 쏘카 대표와 설전을 벌였다. 앞서 경제 분야 수장 중 한 사람인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이 대표와 ‘무례’ ‘이기적’ ‘출마하나’ 등 거친 설전을 주고받았다. 건강한 해법 찾기 대신 소모적 감정싸움만 이어지고 있다.

신기술 등장으로 인한 갈등은 ‘새로운 것에 대한 준비, 사라지는 것에 대한 배려’라는 두 가지 기조 위에서 정부가 주도적으로 진행해야 성공한다.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명분 아래 방치해선 신사업 준비도, 구사업 배려도 모두 실패한다. 4차 산업혁명의 길목에서 신기술과 신사업은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박태희 산업2팀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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