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불법 개농장서 구조했지만 갈 곳 없어" 국회 앞 공원으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3일 낮 12시 국회의사당 앞 교통섬에는 개농장에서 구조된 개들을 위한 약 330㎡(약 100평) 크기의 임시 보호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1.5m 높이의 초록색 울타리 안으로 공원 나무에 묶인 33마리의 개들이 보였다. 공원 한가운데는 동물 단체에서 보내온 사료와 물 등 구호 물품들이 쌓여있었다. 개들을 농장에서 데려올 때부터 보호 활동에 참여한 자원봉사자 박진환(33)씨는 “14일째 자원봉사자들이 24시간 돌아가며 개들에게 밥을 주고 청소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활동가들, 불법 개농장서 구조된 개 33마리 위한 국회 앞 임시보호공간 마련

지난달 21일 경상남도 양산시의 한 개농장에서 발견된 사남이(4)의 당시 모습. 자원봉사자 박씨는 "당시 개농장 뜬장 아래 분뇨가 쌓여있었고, '라면죽'에는 곰팡이가 끼어있었다"고 말했다. [사진 활동가 제공]

지난달 21일 경상남도 양산시의 한 개농장에서 발견된 사남이(4)의 당시 모습. 자원봉사자 박씨는 "당시 개농장 뜬장 아래 분뇨가 쌓여있었고, '라면죽'에는 곰팡이가 끼어있었다"고 말했다. [사진 활동가 제공]

활동가들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달 21일 경상남도 양산시의 한 개농장에 방치된 개 65마리를 발견했다. 당시 몸을 펴지 못할 만큼 좁은 철창에 갇힌 개들이 구더기 낀 ‘라면죽’으로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본 한 활동가가 개들이 도살장으로 팔려갈 것을 우려해 사비로 개들을 샀다. 이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소식을 접한 활동가들이 모였지만 구조된 개들을 받아주는 보호소가 없었다. 활동가들은 영등포경찰서에 국회의사당역 인근 집회신고를 한 뒤 사비를 모아 구조된 개들을 보호할 임시 거처를 만들었다.

국회 앞을 보호 장소로 선택한 이유를 묻자 활동가 권모(43)씨 “정책적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권씨는 “구조된 개들이 유기견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호소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면서 “죽을 위기에 놓인 개들을 구조했는데, 그 책임을 구조자가 온전히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접촉한 유기동물보호소들은 ‘소유주가 있는 개들은 받을 수 없으며 이미 자리도 다 찼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5월 22일 오후 5시 국회 앞 교통섬 양산개농장에서 구조된 개들의 임시보호소. 보호소는 활동가들이 사비를 들여 만들었다. 물, 사료, 우리 등 구조견 보호에 필요한 물품은 시민들이 기부했다. 편광현 기자

5월 22일 오후 5시 국회 앞 교통섬 양산개농장에서 구조된 개들의 임시보호소. 보호소는 활동가들이 사비를 들여 만들었다. 물, 사료, 우리 등 구조견 보호에 필요한 물품은 시민들이 기부했다. 편광현 기자

동물권연구단체 피엔알(PNR)의 서국화 변호사는 “구조자들이 소유권을 포기하더라도 개들이 진짜 유기견인지 해석의 여지는 여전히 남는다”며 “유기견이 아닌 구조견에 대한 법적 근거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동물단체 관계자도 “법적 기준을 맞추지 못한 불법 개농장이 많아 이런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정책적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산시 농장에서 구조된 개 65마리 중 32마리는 SNS로 소식을 접한 시민들이 입양했다. 23일 무료 진료를 나온 한 수의사는 “피부염이나 기생충이 있어 지금은 개들의 건강상태가 완벽하진 않지만, 대부분 치료를 통해 충분히 건강하게 새 주인을 맞을 수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하지만 구조견 입양 절차를 담당하는 활동가 함모(31)씨는 “덩치가 아주 큰 개들이 있어 입양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구조된 개들이 계속 교통섬에 머물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활동가들은 지난 10일 영등포경찰서에 5월 29일까지 집회신고를 했다. 경찰서에 따르면 집회신고 장소는 교통섬이 아닌 인근 길거리다. 활동가 김모(31)씨는 “엄밀히 따지면 집회장소는 횡단보도 앞 길거리다. 시민분들이 불편하실 것 같아 공원에 거처를 꾸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구청 관계자는 “‘불쌍한 강아지들의 보호소를 마련해달라’는 민원이 가장 많이 들어오긴 하지만 ‘냄새가 나고 시끄럽다’는 민원도 들어온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집회 장소 문제와 민원을 고려해 경찰서와 이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21일 경남 양산시 불법개농장에서 구조된 응삼이(1년 6개월). 현재 몸무게는 50kg이고, 성견이되면 55kg이 된다. 건강접종은 모두 마쳤다. 활동가 함씨는 "몸무게가 50kg가 넘는 대형견들은 입양이 어렵다"고 말했다. [사진 독자 제공]

지난달 21일 경남 양산시 불법개농장에서 구조된 응삼이(1년 6개월). 현재 몸무게는 50kg이고, 성견이되면 55kg이 된다. 건강접종은 모두 마쳤다. 활동가 함씨는 "몸무게가 50kg가 넘는 대형견들은 입양이 어렵다"고 말했다. [사진 독자 제공]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