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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고 싶은 욕구, 법적 경계선 넘나드는 의원님의 기밀누설

중앙일보

입력

이달초 한미 정상간 통화내용 중 일부를 공개했던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의 모습. [연합뉴스]

이달초 한미 정상간 통화내용 중 일부를 공개했던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의 모습. [연합뉴스]

비밀 유출 외교관 처벌O 공개한 의원 처벌X

청와대는 22일 주미 한국대사관 소속 고위 외교관 A씨가 고교 선배인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한미정상간의 통화 내용을 유출했다고 밝혔다.

정상간 통화 내용은 3급 비밀이다. 법조계에선 비밀을 '유출'한 외교관 A씨는 공무상비밀누설죄로 처벌이 가능하지만 그 비밀을 이달초 기자회견으로 공개한 강 의원에 대한 처벌은 어렵다고 보고있다. 강 의원은 자신에게 정보를 제공한 취재원을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왜 그럴까. 검찰 공안통 출신 변호사는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때문만은 아니다"며 "면책특권은 국회 본회의와 상임위원회, 특별위원회 등에 주로 적용된다"고 말했다. 다만 이 변호사는 “강 의원이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소속이 아니라 외교 기밀 관련 직무가 없어 공무상 비밀누설죄 적용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공무상 비밀누설죄는 공무원이 자신의 직무와 관련한 비밀을 누설할 때 2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청와대가 9일 강효상 의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말 방일 이후 한국을 방한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전한 것에 대해 ’무책임할 뿐 아니라 외교 관례에도 어긋나는 근거없는 주장에 대해서 강 의원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가 9일 강효상 의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말 방일 이후 한국을 방한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전한 것에 대해 ’무책임할 뿐 아니라 외교 관례에도 어긋나는 근거없는 주장에 대해서 강 의원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 고민정 대변인이 강 의원의 기자회견에 대해 "근거없다"고 반박했던 점에 대해선 "청와대가 당시 사실을 부인했더라도 외교관 A씨가 비밀을 유출한 사실은 달라지지 않아 법적 영향은 없다"고 설명했다.

복잡하다. 직접 기밀 관련 직무에 연관돼 있지 않다면기밀을 누설한 국회의원을 처벌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국회의원에겐 헌법상 면책특권이 부여돼있고 표현의 자유도 폭넓게 인정된다.

다선 국회의원 출신의 변호사는 "특히 야당 의원의 발언은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매우 높은 가치로 법적 보호를 받는다"며 "강 의원의 기자회견도 그런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회의원들의 '말하고 싶은 욕구' 

하지만 일각에선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활용해 정부의 비밀을 무분별하게 공개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한 여당 의원 보좌관은 "의원님들은 항상 다른 사람이 모르는 정보를 공개하며 주목을 받고싶은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팟캐스트 방송에 출현해 "임종석 비서실장에게 들었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했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우상호, 김정은이 답답해했다"  

사실이라면 매우 민감한 국가비밀이었다. 이후 청와대에선 "터무니 없는 소리"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야당에선 "임 실장이 말한 것이라 유야무야 넘어간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해 남북 정상간 대화 중 일부를 방송에서 말해 논란이 일었다. [뉴스1]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해 남북 정상간 대화 중 일부를 방송에서 말해 논란이 일었다. [뉴스1]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미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있다. 지난해 9월 자신의 지역구가 포함된 미공개 택지계획을 보도자료로 불법 유출한 혐의다.

신 의원은 당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이라 강효상 의원과 달리 직무 관련 조항이 적용된다. 검찰 공안통 출신 변호사는 "이럴 경우 신 의원이 공개한 자료가 비밀로서 보호될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그 정보가 공개돼 국가 기능이 위협을 받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檢, 김태우 폭로 16 중 5개만 기소

지난달 공무상 기밀누설로 기소된 김태우 전 수사관의 경우도 검찰은 김 전 수사관이 폭로한 내용의 사실관계와 비밀의 가치를 일일히 따졌고 16개의 폭로 중 5개에 대해서만 비밀누설 혐의를 적용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와 비교해 최근 민감한 정보들이 노골적으로 유출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구 교수는 "SNS등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국민들도 보다 자극적인 정보를 원하는 경향이 엿보인다"며 "일부 국회의원이 그 시류에 편승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변협 회장)는 "국회의원에게 면책특권이 부여된 건 국민의 알권리 때문"이라며 "의원들은 그 점을 생각하며 자신의 발언에 보다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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