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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최저임금은 죄가 있다”…경제성장률 줄줄이 하향 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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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줄줄이 하향 조정이다. 어제 KDI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에서 2.4%로 낮췄다. 이틀째 이어진 비보다. 하루 전 OECD도 2.6% 전망을 2.4%로 내렸다. 그래도 시장 반응은 무덤덤하다. 성장률 하향 조정에 면역이라도 생긴 듯하다. 실제로 그럴 만큼 국내외에서 성장률 낮추기가 쏟아졌다. 한국은행·LG경제연구원·무디스·노무라증권·바클레이즈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예상치를 내렸다. ING그룹(1.5%)과 캐피털이코노믹스(1.8%)처럼 1%대를 제시한 곳도 수두룩하다.

KDI, 올해 전망치 2.4%로 낮춰 #최저임금 과속 인상이 빚은 결과 #이제라도 상승에 브레이크 걸어야

하향 조정하는 이유는 거의 이구동성이다. 수출 감소와 예상보다 심각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이다. 특히 2년 새 29%나 오른 최저임금은 한국 경제가 비명을 지르게 했다. 고용 참사를 일으켜 소비를 위축시키고 빈부격차를 늘려 놓았다.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 효과가 90%”라고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진단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최저임금의 부작용은 고용노동부 조사에서도 확인됐다. 도·소매와 음식·숙박업은 최저임금 때문에 고용과 근로시간이 함께 줄었다고 정부가 그제 공식 발표했다. 최저임금이 1% 오르면 일자리 1만 개가 사라진다는 통계 분석도 있다. 최저임금 때문에 2년 새 30만 개 가까운 일자리가 증발했다는 얘기다. 영세 상인들의 아우성은 두말할 나위 없다. 오죽하면 엊그제 더불어민주당이 개최한 정책토론회에서 소상공인연합회 정원석 전문위원이 이런 말까지 했을까. “최저임금은 죄가 없다지만 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부와 여권에서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2주년 대담에서 “공약이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이라고 해서 무조건 그 속도로 인상돼야 하는 건 아니다. 우리 사회, 우리 경제가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는지 적정선을 찾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동결에 가까운 수준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고, 여당 중진인 송영길 의원은 “내년 최저임금은 동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뿐이 아니다. IMF는 “내년도 최저임금 상승이 노동생산성 증가분(3~4%) 이하로 설정돼야 한다”고 권고했다. 최저임금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도 넓어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도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2020년 1만원 공약을 이행하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은 “전국 순회 투쟁을 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마냥 액셀러레이터만 밟을 수는 없다. 이미 지나친 최저임금 인상 과속으로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은 연기를 뿜고 있다. 지금은 브레이크를 꾹 밟아야 할 시점이다. 내년 최저임금을 동결 수준으로 묶더라도 3년 상승률은 30%에 가깝다. 결코 낮은 인상률이 아니다. 게다가 한국의 최저임금은 이미 중위임금의 60%를 넘었다.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비율이 60%에 이르면 “기업이 인력 채용보다 설비 자동화에 투자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분석했다. 이번에도 최저임금을 과속 인상하면 자영업뿐 아니라 기업에서까지 고용에 문제가 생긴다는 의미다. 자칫 한국 경제가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입을까 두렵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