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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사라지니 꽃가루가 말썽…“산에 갔다 기절하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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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날씨를 보인 14일 오후 대청호 소나무숲에 송홧가루 등 뿌연 꽃가루가 날리고 있다.김성태 기자

무더운 날씨를 보인 14일 오후 대청호 소나무숲에 송홧가루 등 뿌연 꽃가루가 날리고 있다.김성태 기자

회사원 박모(31)씨는 지난 15일 점심시간에 밖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깜짝 놀랐다. 벤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잠깐동안 가방 위에 허옇게 꽃가루가 앉았기 때문이다. 박씨는 “그날따라 바람이 부는데 눈앞이 뿌옇게 보일 정도로 꽃가루가 많았다”고 전했다.

직장인 권모(28)씨도 지난 3주간 눈이 따갑고 재채기‧콧물이 나서 고생했다며 “꽃가루 때문에 괴로워서 밖에 나가기가 무서울 정도”라고 호소했다.

미세먼지 다음은 꽃가루…알레르기 환자 증가

서울지역 기준 꽃가루달력.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의 꽃가루 분포는 이와 비슷하고, 제주도의 경우 삼나무가 특히 많은 점이 다르다. [국립기상과학원 제공]

서울지역 기준 꽃가루달력.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의 꽃가루 분포는 이와 비슷하고, 제주도의 경우 삼나무가 특히 많은 점이 다르다. [국립기상과학원 제공]

5월 중순부터 미세먼지가 줄면서 연일 파란 하늘이 이어지고 있지만, 꽃이 피고 꽃가루가 날아다니면서 알레르기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늘고 있다. 꽃가루와 관련된 질병은 천식, 알레르기 비염, 아토피 피부염, 접촉성 피부염 등이다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20~30%가 알레르기 비염을 앓고 있고, 그중 꽃가루에 알레르기를 보이는 환자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2012년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꽃가루 알레르기의 강도도 더 심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립기상과학원은 지난달 ‘꽃가루 달력’을 공개했다. 꽃가루는 나무‧초목‧잔디류에서 생긴다. 봄(4~5월)은 나무, 가을(8월 중순~10월 초순)은 돼지풀·환삼덩굴·쑥 등 초목류가 기승을 부린다. 서울아산병원 알레르기내과 조유숙 교수는 "봄~가을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가 꾸준히 있다"며 "꽃가루가 워낙 다양하다보니 알레르기 검사 키트 55종 물질 중 3분의 2가 꽃가루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약하지만 많은 ‘소나무’, 적지만 강한 ‘참나무’

송화가루를 내는 '소나무 꽃'. [중앙포토]

송화가루를 내는 '소나무 꽃'. [중앙포토]

4~5월에는 꽃가루 양이 가장 많고 종류가 다양하다. 특히 6월까지는 송화(소나무 꽃)가루가 집중적으로 날린다. 국립생태원 천광일 박사는 "우리나라 나무의 17~20%가 소나무과일 정도로 개체수가 많다. 바람으로 수분을 하는 풍매화라서 2㎞ 넘게 날아간다“고 말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박혜정 교수는 ”송화가루는 알레르기를 그리 심하게 유발하지 않지만  양이 워낙 많아서 피부나 눈을 자극하고, 비염 등을 유발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소나무 꽃가루가 날릴 때 참나무(도토리나무 등) 꽃가루도 많이 날린다. 이는 알레르기를 심하게 유발한다. 국립생태원 천 박사는 “도심 알레르기의 주범은 산에서 날아온 참나무 꽃가루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혜정 교수는 “가끔 산에 올라갔다가 알레르기가 심해져서 기절하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여름엔 잔디꽃가루‧버들씨앗 주의

'베이징 꽃가루 상황'이라며 화제가 됐던 흰 덩어리들은 사실 버드나무 종류의 씨앗이 뭉친 것이다. [환구망 화면 캡처]

'베이징 꽃가루 상황'이라며 화제가 됐던 흰 덩어리들은 사실 버드나무 종류의 씨앗이 뭉친 것이다. [환구망 화면 캡처]

다행히도 송화가루‧참나무꽃가루는 5월이면 끝난다. 국립기상연구원 조창범 연구사는 "올해는 지난해보다 개화가 1주일 정도 늦었고, 5월 중순 절정기를 지났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솜털 씨앗이 날아다닐 때다. 천 박사는 “얼마 전 중국 베이징에서 흰 꽃가루가 눈처럼 날린 적이 있는데, 이게 이태리포플러‧은백양‧능수버들 등 버드나무‧포플러의 씨앗이 뭉친 것”이라며 “민들레 홀씨처럼 생긴 이 씨앗이 날아다니면서 코에 들어가 자극한다”고 말했다.

6월에는 잔디·돼지풀·쑥 등의 여름 꽃이 핀다. 셋 다 알레르기를 심하게 일으킨다. 돼지풀과는 꽃가루가 많고 최소 2㎞ 날아간다. 버려진 땅 어디서든 자랄 정도로 번식력 강한 외래종이다. 쑥은 여름에 개화한다.

이 외에도 벼, 우산잔디 등 잔디류는 일년 내내 조금씩 꽃가루를 날린다. 도심의 잔디는 꽃대를 잘라내 꽃가루가 없는 경우도 많지만, 그래도 잔디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은 잔디밭에 누울 때는 주의해야 한다. 국화과 꽃도 3~11월 꽃을 피우며 조금씩 꽃가루를 날린다. 조창범 연구사는 “꽃가루에서 안전한 달은 없다”고 말한다.

알레르기 환자는 도심 '자작나무' 주의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숲. 자작나무는 참나무목 자작나무과로, 알레르기 유발성이 강한 편이다. 곧게 뻗는 줄기와 흰 껍질로 '나무의 여왕'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최근 도심 일부지역에 조경수로 쓰이고 있다. [중앙포토]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숲. 자작나무는 참나무목 자작나무과로, 알레르기 유발성이 강한 편이다. 곧게 뻗는 줄기와 흰 껍질로 '나무의 여왕'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최근 도심 일부지역에 조경수로 쓰이고 있다. [중앙포토]

한여름에는 비교적 꽃가루가 적다. 여름이 끝날 무렵인 8월부터 환삼덩굴 등이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다. 환삼덩굴도 소나무만큼이나 꽃가루가 잘 퍼지는 식물로, 8~10월 집중적으로 꽃가루가 날린다. 이들은 겨울에 꽃이 마르고 부스러지면서 가루가 퍼져 드물게 겨울에 알레르기를 일으키기도 한다.

최근 새로 도심에 등장한 알레르기 꽃가루는 자작나무다. 북쪽에 자생하는 나무인데, 최근 도심 아파트 단지나 골프장에 조경수로 많이 쓰인다. 조창범 연구사는 “자작나무가 쭉쭉 뻗고 보기에 좋아서 관상용으로 심는데,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예쁘다고, 녹화가 빨리 된다고 삼나무를 전국에 심던 일본은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가 인구의 40%인 33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지자체가 가로수를 심을 때 알레르기 유발여부를 잘 따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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