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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공항, 쓰레기 매립지 되나…화성에서 가장 '뜨거운 땅' 된 화옹지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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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서쪽 끝에 위치한 화성방조제. 방조제 위 왕복 4차선 도로에 진입하자 습지와 갈대숲이 펼쳐진 화옹지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물가에선 10여 마리의 흰 새 떼가 유유히 수면 위를 헤엄쳐 지나갔다.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인 '저어새'다. 저어새 반대편엔 천연기념물 제326호로 지정된 주홍색 부리를 가진 검은머리물떼새와 가슴에 김을 붙인 듯한 검은 무늬를 가진 민물도요 떼가 양쪽으로 나뉘어 먹이를 찾고 있었다.

이들 새 사이 중간중간엔 회색 날개를 가진 갈매기의 모습도 보였다. 사람이 지켜보는 것을 느꼈는지 붉은어깨도요 떼 수십 마리가 일제히 하늘로 올라 군무를 시작했다. 박혜영 화성시생태관광협동조합 사무국장은 "바다를 매립해 만든 화옹지구는 민물과 바닷물이 공존하는 특성으로 다양한 생명 종이 서식하는 천혜 환경의 보고"라고 말했다.

경기도 화성시 화옹지구 전경. 철새 등이 찾는 천혜 지역이지만 군 공항 이전과 수도권 매립지 대체지 지정 등으로 화성시에서 가장 뜨거운 지역이다. [사진 화성시]

경기도 화성시 화옹지구 전경. 철새 등이 찾는 천혜 지역이지만 군 공항 이전과 수도권 매립지 대체지 지정 등으로 화성시에서 가장 뜨거운 지역이다. [사진 화성시]

철새들의 낙원인 화옹지구는 요즘 화성시에서 가장 뜨거운 땅이다. 군 공항, 쓰레기 매립지 이전 후보지로 이름을 올리면서 논란이 거세져서다.
화옹지구는 농림축산식품부가 간척농지를 조성하기 위해 9671억원을 들여 1991년부터 화성시 서신면 궁평항에서 우정읍 매향리까지 9.8㎞의 바닷물을 막아 간척지 4482㏊와 화성호 1730㏊를 조성한 곳이다. 사업지구 1∼9공구 중 방수제인 1∼3공구(37㎞)는 현재 준공됐다. 4공구(768㏊)엔 에코 팜 랜드, 5공구(543㏊)는 화훼단지, 6공구(1046㏊)는 농지, 7∼8공구(2125㏊)는 복합영농단지를 2023년까지 조성된다.

이곳이 뜨거워진 이유는 지난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2월 국방부가 수원 군 공항 예비이전 후보지로 화성 화옹지구를 선정했다.

이후 조용한 농어촌 마을의 분위기는 변했다. 마을 어귀 등 곳곳엔 "군 공항 이전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붙었다. 주민들은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국방부 등에서 항의 집회도 벌였다.

'벌집 주택' 우후죽순 

화옹지구 인근에는 현재 우정읍·남양읍·장안면·마도면·서신면 등 화성 서부 5개 읍면이 들어서 있고 거주 인원만 4만명 이상이다. 미군 폭격 훈련장으로 고통을 받았던 우정읍 매향리도 화옹지구와 인접해 있다. '쿠니사격장'으로 불렸던 이 미군 폭격 훈련장은 소음과 오폭 피해 등으로 주민 반발을 사 2005년 폐쇄됐다. 매향리 주민 이모(68)씨는 "쿠니사격장 폐쇄로 사격 소음 등에서 겨우 벗어났는데 군 공항이 이전되면 이번엔 비행기 소음 등에 시달려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우정읍 일대엔 군 공항 이전 보상금을 노린 사람이 살지 않는 '벌집 주택'도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는 상태다.

화성시민을 대상으로 한 군 공항 이전 찬반 설문조사 결과. [사진 화성시]

화성시민을 대상으로 한 군 공항 이전 찬반 설문조사 결과. [사진 화성시]

여기에 민-민 갈등도 일고 있다. 일부 주민들이 "지역이 발전할 기회"라며 군 공항 이전을 찬성하고 있다. 실제로 화성시가 최근 시민 1200명을 대상으로 군 공항 이전에 대한 찬반을 확인한 결과 70%(841명)가 반대 의사를 밝혔고 24.4%(293명)는 이전에 찬성했다.

화옹지구 인근 주민들의 허탈하게 하는 소식은 또 있다. 2025년 사용이 종료되는 인천시 서구 백석동 수도권 쓰레기 매립장의 대체 후보지로 화옹지구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서신면 궁평리에서 만난 주민 박모(70)씨는 "왜 화성 서부지역, 그것도 화옹지구만 부정적 시설 이전지로 거론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좋은 입지가 오히려 화 됐나 

이유는 위치 때문이다. 바다를 매립해 만든 부지는 광활하고 인근엔 사람이 많이 사는 도심지역도 없다. 소음(군 공항)이나 악취(매립지)에 대한 주민 피해도 작고 간척지라 땅값도 기존 부지보다 저렴하다. 특히 화옹지구는 산업단지가 있는 경기 안산·시흥, 인천광역시 등 다른 지역과도 가깝다. 군사 보호구역, 상수원 보호구역 등으로 묶인 경기 동부·북부지역에 비해 개발도 수월한 편이다. 화성시 관계자는 "좋은 입지 탓에 혐오시설 부지 후보지가 된 셈"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화성시 화옹지구 인근에 붙어있는 군 공항 이전 반대 현수막. 최모란 기자

경기도 화성시 화옹지구 인근에 붙어있는 군 공항 이전 반대 현수막. 최모란 기자

화성시는 "개발보다는 화옹지구의 생태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각종 활동을 펼치고 있다. 화옹지구에 저어새 등 희귀종의 철새 수천 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화성시에 따르면 화옹지구 안에 있는 습지엔 저어새 등 멸종위기 동물을 비롯한 4만 마리의 희귀종이 매년 관측되고 있다. 이에 지난해 12월엔 'EAAFP(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 경로 파트너십)'에 등재됐다.

화성시는 주민, 환경단체 등과 '람사르 습지' 등록도 추진 중이다. 보존 가치가 높은 습지를 람사르협회가 지정·등록해 보호한다. 화성시는 이를 위해 지난 12~13일 세계적인 습지·환경 전문가 등을 초청해 '화성습지 생태·환경 국제 심포지엄'을 열기도 했다.

화성=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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