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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 니코틴 살해' 남편, 선고 직전 갑자기 "유서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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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연합뉴스]

신혼여행 중 아내에게 니코틴 원액을 주입해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남편 A씨(23)의 항소심 재판이 선고만 남겨두고 있다. A씨는 ‘아내의 유서’를 새로운 증거로 제시하며 “자살을 도왔을 뿐 살해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반면 피해자의 유족은 신빙성을 의심하고 있다.

15일 항소심 재판을 맡은 대전고법 형사1부(부장 이준명) 등에 따르면 피해자의 언니 김모(24)씨는 “A씨를 엄벌에 처해 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지난 10일 제출했다.

유족은 탄원서를 통해 “동생이 갑자기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에 도착해 유품을 정리하려고 숙소에 올라가겠다고 하니 A씨가 막았다”며 “동생 유품을 전달해줬을 뿐 유서에 관해서는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A씨 주장대로 제 동생이 죽은 당일 유서를 작성했다면 왜 제게 그때 보여주지 않았나”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A씨가 ‘유서’라고 부른 메모지는 지난달 10일 결심 공판에서 증거로 제출됐다. 재판부는 “이렇게 중요한 증거를 왜 재판이 끝나가는 시기에 제출하냐”고 물었고, A씨는 “상당한 고민을 하다 제출하게 됐다”고 답했다. 이 때문에 검찰 구형도 한 차례 연기됐다.

지난 3일 다시 열린 결심공판에서 대검찰청 문서감정실은 “제출된 유서에 피해자의 필적과 유사한 부분, 상이한 부분이 모두 발견돼 자필 유서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검찰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사형을 구형했다.

A씨가 자살의 증거로 유족에게 전달한 ‘유언’ 녹취 파일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 유족의 입장이다. 유족은 “죽기 전 남긴 유언이라기보다 가족들 몰래 A씨와 일본으로 여행 온 것에 대해 죄송하다는 내용이었다. 그 녹취 내용 또한 A씨 휴대전화 메모에 작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밝혀졌다”고 탄원서에 적었다.

그러나 A씨는 최후변론에서 “1심 재판부가 아내의 마지막 인사가 담긴 음성 메시지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으면서 저는 국가가 인정한 살인범이 됐다”며 “사망 직전 가족에게 돌아가지 않겠다는 유언이 증거가 아니라면 다른 무엇이 증거냐”고 말했다.

유족은 또 피해자의 죽음 이후 A씨의 행적을 설명하며 “자신이 사랑하던 아내가 자살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탄원서에는 “일본에서도 A씨는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나가 놀았고, 동생 안치한 날에는 지역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촬영해 동영상 사이트에 올리는 등 이해 못 할 행동을 보였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면서 “제 동생은 친구들에게 ‘여행에서 돌아올 때 선물을 사오겠다’고 약속했다. ‘입사하고 싶으니 회사를 소개해 달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며 “여행 전부터 자살을 결심해서 떠난 아이라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A씨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유앤아이 측은 탄원서 내용에 관해 “진행 중인 사건이라 언급하는 게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지난 2017년 4월 25일 오전 2시쯤 일본 오사카의 한 숙소에서 아내(당시 19세)에게 니코틴 원액을 일회용 주사로 주입해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보험회사 담당자의 살해 의심 신고로 경찰 조사가 시작됐고, A씨 집에서 살인 계획 등이 담긴 일기장이 발견되면서 덜미를 잡혔다. 또 지난 2016년 12월 일본에서 니코틴이 든 숙취해소제를 다른 여자친구에게 먹여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살인미수)도 받는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고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항소심 선고 공판은 17일 오후 2시에 열린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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