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현기의 시시각각

워싱턴에서 보는 송현정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김현기 기자 중앙일보 도쿄 총국장 兼 순회특파원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2주년을 맞은 지난해 11월 폭스뉴스와 인터뷰를 했다. 폭스는 트럼프가 유일하게 ‘진짜 언론’이라고 추켜세우는 방송사. 진행자는 고참 앵커 크리스 월러스였다.

답변 아닌 질문을 몰아세운 후진성 #이 정도 질문 강도에 놀랄 일인가 #‘진짜 인터뷰’ 아직 절반도 못 왔다

“당신은 언론을 ‘국민의 적’이라 부르는데.” (월러스) “100% 진실이다.”(트럼프) “케네디 대통령도 (마음에 안 들어) 뉴욕 해럴드트리뷴 구독을 취소했다. 하지만 ‘국민의 적’으로 부르진 않았다. 러시아·중국·베네수엘라의 독재 지도자들이 당신의 언어를 인용해 언론을 탄압하고 있지 않으냐.”(월러스) “난 내 이야기를 할 뿐이다.”(트럼프) “하지만 당신은 지금 전 세계에서 (언론) 탄압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월러스), “난 미디어를 좋아한다. 하지만 공정해야 한다.”(트럼프) “(말을 끊고) 대통령이 뭐가 공정하고 뭐가 공정하지 않은지를 결정할 순 없다”(월러스) “난 안다.”(트럼프) “오바마 대통령도 폭스뉴스에 대해 불만이 많았지만, 우리 보고 ‘국민의 적’이라곤 안 했다.”(월러스) “당신보고 그렇게(국민의 적) 부른 게 아니라니까…”(트럼프) “(말을 끊고) 우린(언론은) 하나다.”(월러스)

안경 너머 불만 가득한 월러스의 눈, 짜증이 잔뜩 난 트럼프의 상기된 얼굴. 트럼프에 우호적인 방송이라 소문난 폭스뉴스라지만 인터뷰란 이런 것이다.

지난주 KBS 송현정 기자의 문재인 대통령 인터뷰를 두고 아직까지 말이 많다. 대통령 말을 자주 끊었고(80분간 총 28차례였다 한다), ‘독재자’란 용어를 사용했고(야당의 주장을 인용했다), 대통령에게 찡그린 듯한 표정을 지은 게 문제라고 한다. 몇 가지 짚어보자. 첫째, 인터뷰를 한 사람도, 받은 사람도 불만이 없다. 속마음은 모르지만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문제 삼을 이유가 없다. 둘째, 말을 끊는 건 기자 재량이다. 시간이 제한된 생방송 인터뷰에서 핵심을 벗어난 답변을 하염없이 듣고 있을 순 없다. 폭스 인터뷰 당시 위에 요약한 ‘언론’ 부분(6분 42초) 에서 월러스는 트럼프의 말을 무려 16번 끊고 들어갔다. 비율로 단순 계산하면 송 기자의 7배다. 그래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하라고 언론사마다 ‘에이스 기자’를 인터뷰에 투입한다. 셋째, 기자에게 부적절한 질문이란 없다. 월러스는 대통령 면전에서 제3자 인용도 않고 “당신은 (언론) 탄압의 상징(Beacon of repression)”이라 직격탄을 날렸다. CBS 방송의 백악관 출입기자 개럿은 2015년 이란 핵 협상 합의를 뽐내는 오바마에게 “미국인 네명이 아직 이란에 억류돼 있는데 어떻게 당신은 팡파르를 울릴 수 있느냐”고 몰아세웠다. 굳이 미국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최대 권력 대통령에게 직설적으로, 비판적으로 캐묻는 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당연한 일이다. 고분고분 착한 질문만 하고, 그걸 칭찬하는 사회는 북한 같은 왕조사회다.

인터뷰의 핵심은 국민이 원하는 질문을 기자가 했는지, 그리고 거기에 대통령이 얼마나 제대로 설득력 있게 답했는지다. 인터뷰 뒤 송 기자 남편과 사촌동생이 누구며, 표정이 어떠니 하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도배하는 행태는 본질은 외면하고 곁가지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우리 사회의 후진성을 보여준다.

60년 동안 무려 10명의 미 대통령에게 가슴을 후벼 파는 질문을 쏟아냈던 헬렌 토머스 기자가 은퇴하며 남긴 이야기. “거친 질문이 무례하다곤 생각 않는다. 대통령이 추궁을 당하지 않으면 그는 군주나 독재자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인기를 얻고자 기자가 된 게 아니다. 답을 얻을 때까지 대통령에게 끊임없는 압박을 가해야 한다. 그건 우리 사명이다.”

공부도 부족하고 직업의식도 약한 기자들, 자신이 지지하는 대통령에 대한 비난에 익숙지 않은 국민들 모두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송 기자 인터뷰는 아직 폭스뉴스 월러스의 절반에도 못 갔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