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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둥 오페라의 새로운 스타가 도널드 트럼프?

중앙일보

입력

2019년 4월, 홍콩에서 재미있는 월극(越劇) 하나가 막을 올렸다.

"Trump on Show"

1971년 나고야에서 열린 제3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일본은 당시 세계 최강팀 중국을 초청했다. 대회가 끝날 무렵, 중국 선수단은 미국 선수단과의 교류를 제안했다. 미국은 이에 동의했고 그해 4월 10일, 미국 탁구 대표단은 베이징에 도착해 탁구 경기를 가졌다. 경색돼 있던 미중 양국 관계는 탁구를 통해 풀리게 됐다. 이것이 유명한 '핑퐁 외교'다. 다음해인 1972년 리처드 닉슨은 미국 대통령 최초로 중국에 방문해 마오쩌둥 주석과 만났다.

그런데, 이같은 역사적 사실을 완전히 각색한 월극이 외신을 비롯해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트럼프 온 쇼'의 한 장면

'트럼프 온 쇼'의 한 장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환영합니다"

-마오쩌둥 3세

'트럼프 온 쇼'의 한 장면

'트럼프 온 쇼'의 한 장면

CNN에 따르면 베테랑 월극 작가인 에드워드 리 퀴밍(Edward Li Kui-ming)이 쓴 '트럼프 온 쇼'는 초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에서 자라 오랫동안 보지 못한 쌍둥이 동생을 찾는 미국 대통령의 모험기다.

몸에 꼭 맞는 정장과 시그니처인 빨간 넥타이를 맨 젊은 트럼프가 무대로 나온다. 그는 마오의 오른팔이었던 저우언라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쌍둥이 동생이 있다. 그의 이름은 촨뿌(川普, chuanpu*)다. 그 앤 나와 거의 똑같이 생겼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을 중국어 발음으로 표기하면 唐諾德 川普(Donald Trump)다.

트럼프 온 쇼

트럼프 온 쇼

이 월극은 가족 해체, 로맨스, 우정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를 엮어 만들었다. 이 무대는 광둥식 오페라인 월극의 전통과 더불어 정교한 춤, 중국의 현악기와 독특한 고음 보컬을 특징으로 제작됐다.

작가 에드워드 리 퀴밍은 광둥식 오페라인 월극의 형태를 현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등장인물은 현대의 정치가 외에도, 북미정상과 행성 간 전쟁에까지 나아간다.

'트럼프 온 쇼'의 한 장면

'트럼프 온 쇼'의 한 장면

그의 이런 접근은 홍콩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홍콩의 오페라하우스인 신광희원(新光戲院, Sunbeam Theatre)에서의 공연은 매진이었다. 4일 간 이어진 공연에는 1000여 석 모두 꽉 찼다.

'트럼프 온 쇼'의 한 장면

'트럼프 온 쇼'의 한 장면

홍콩의 광둥식 오페라는 사실 많은 이들이 찾지 않는 '오래된 것'이 됐다. 사람들이 찾지 않으면 그 형태나 전통은 명맥을 이어가기가 힘들어진다. 이에 리는 지난 9년 간, 줄어드는 관객의 발길을 붙잡을 방법에 대해 고민해왔고, '트럼프 온 쇼'와 같은 이색적인 월극을 창작해냈다.

리가 제작한 이 월극엔 트럼프, 그의 쌍둥이형제 그리고 마오쩌둥까지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 세 인물 모두 월극의 인기배우인 룽쿤틴(Loong Koon-tin)이 연기한다. 룽에게 트럼프란 단지 무대를 위해 만들어진 인물이다. 그가 많은 군중 앞에서 연설할 때 보이는 큰 제스쳐들은 월극에서 사용하는 큰 움직임들과 비슷한 맥락을 보인다.

그리고 이방카 트럼프 역을 맡은 배우 역시 실제 이방카의 인상착의와 비슷한 의상을 입고, 특징적인 부분을 연기한다. 이러한 의상 역시 월극의 아주 섬세하고 정교한 스타일에 비할 수는 없지만 각 등장인물들의 특징적인 부분을 극대화했다는 점에서는 맥을 같이 한다.

월극은 1500년대에 처음 등장했다. 초창기엔 공연장의 좌석 1000석 이상은 거뜬히 메우는 종합예술연극이었으나 TV가 보급되고, 영화가 발전하며 월극은 점차 사람들에게서 멀어졌다. 홍콩의 경우 치솟는 땅값 때문에 신광희원(新光戲院, Sunbeam Theatre)을 제외한 모든 극장이 문을 닫게 됐다고 한다.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홍콩은 문화 보존 기금을 만들어 월극의 명맥을 이어 나가려는 시도를 했고. 2009년에는 유네스코가 월극을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2019년 초, 공공기금으로 운영되는 월극 공연장 시취센터(Xiqu Centre, 戲曲中心)가 문을 열었다. 중국 전통 극장의 예술을 보존하고, 발전시킨다는 사명을 갖고 있다. 침사추이 지역에 자리한 이 공연장은 2만8000평 규모로 1200석 이상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 2개를 갖고 있다.

오래된 것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것에 과감히 도전한 월극 '트럼프 온 쇼'. 홍콩에 간다면, 월극 한 편 어떨까?

차이나랩 임서영
출처: CNN

네이버중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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