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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한국당에 쏠리던 중도층 관심…찬물 끼얹은 ‘달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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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성지원 정치팀 기자

성지원 정치팀 기자

“당의 이미지를 바꾸겠습니다. 실력을 갖춘 품격 있는 야당이 되겠습니다.”

나경원 원내대표의 부적절 언어 #품격·합리성 기대한 중도층 실망 #당내서도 “의욕 앞서 너무 나갔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당선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품격’을 강조한 나 원내대표에게 다른 당들도 “합리적인 보수의 길을 걷길 바란다”는 기대를 전했다.

그런데 나 원내대표는 11일 대구에서 열린 당 집회에서 대통령 취임 2주년 특별대담의 질문자였던 송현정 KBS 기자를 거론하며 “‘달창’들에게 공격받았다”고 표현했다. ‘달창’은 문재인 대통령의 열성 지지층인 ‘달빛기사단’을 일부 보수진영에서 비하해 부르는 ‘달빛창녀단’의 준말이다. 해당 발언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자 나 원내대표는 3시간 만에 “정확한 의미와 표현의 구체적 유래를 전혀 모르고 쓴 말”이라는 사과문을 내놨다.

하지만 무소속 손혜원 의원은 “제1야당 원내대표라는 분이 (그런 표현을)모르고 쓴 게 더 한심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여성 의원 일동은 13일 성명서를 내고 “여성혐오적 발언으로 여성과 국민을 모욕했다. 국민에 대한 기본적 예의조차 없다”며 “원내대표직을 사퇴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왼쪽)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13일 경북 구미시 구미보에서 현장 최고위원회를 마친 뒤 4대강 보 철거 저지를 위한 행진 도중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왼쪽)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13일 경북 구미시 구미보에서 현장 최고위원회를 마친 뒤 4대강 보 철거 저지를 위한 행진 도중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이 같은 논란은 상승세인 한국당 지지율에도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한국당의 지지율 상승세는 최근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선명성을 내세우며 보수층을 결집한 투쟁전략이 유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와중에 경제지표 악화와 두 차례에 걸친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한국당 입장에선 현 정부에 실망한 중도층 표심까지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때문에 여권에선 “북한 미사일 발사로 곤궁에 처한 문재인 정부를 나경원이 구해냈다”는 비아냥마저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 10일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관료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진짜 저도 2주년이 아니고 마치 4주년 같아요, 정부가”라고 말한 것은 야당으로선 레임덕 문제를 지적할 절호의 기회였으나 ‘달창’ 논란에 가려져 버렸다.

정부에 대한 야당의 비판은 필요하지만 원내대표의 위치에선 표현 하나에도 신중해야 한다. 특히 비판의 대상이 국민일 땐 더 그렇다. 송현정 기자에 대한 문 대통령 열성 지지층의 공격엔 분명히 도를 넘은 대목이 있지만, 그들을 ‘달창’이라고 부르는 건 정치지도자가 써야 할 언어는 아니다.

한국당 내에서도 “의욕이 앞서 나 원내대표가 너무 나갔다”는 자성이 나온다. 대표 시절 ‘막말’ 논란에 자주 휩싸였던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문재인 정권 실정이 심해졌던 시점에 5·18 망언 하나로 전세가 역전됐듯 장외 투쟁이란 큰 목표를 ‘달창’ 시비 하나로 희석시킬 수 있다”며 “뜻도 모르고 사용했다면 더욱 더 큰 문제고, 뜻을 알고도 사용했다면 극히 부적절한 처사”라고 말했다.

유성진 이화여대 교수는 “나 원내대표의 발언은 ‘반여성적’이자 정치력이 부족한 발언”이라며 “이런 방식으로는 지지율이 박스권을 넘기 힘들다. 결국 총선을 앞두고 중도층을 잡을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여당에 실망한 중도층은 “수권정당이 되겠다”고 공언해 온 한국당에 ‘품격’과 ‘합리성’을 기대하고 있다. 품격 있고 합리적인 대안정당, 나 원내대표가 취임 당시 밝혔던 공약이기도 하다.

성지원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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