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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사건’ 피해자에 나온 구조금 1억원, 누가 관리하나

중앙일보

입력

지적장애 2급인 A(26·여)씨는 지난해 10월 어머니를 잃었다. 조현병을 앓던 오빠가 인천시 집에서 흉기를 휘둘러 어머니를 살해했다. A씨도 경찰에 신고하려다 흉기에 7차례나 찔려 중상해를 입었다. 재판을 받으면서 A씨 오빠는 “어머니와 동생이 뱀파이어여서 죽였다”고 주장했다. 1심은 피고인에 징역 30년형을 선고했다. 이른바 ‘인천 뱀파이어’ 사건이다.

조현병 오빠가 "뱀파이어"라며 친모 살인 #지적장애 범죄피해자 위한 신탁계약 첫 체결

재판정의 피고인, 변호인석 사진.[연합뉴스]

재판정의 피고인, 변호인석 사진.[연합뉴스]

살인사건 유족에 나온 구조금 1억원

범죄피해자보호법에 따라 A씨 앞으로 구조금이 나왔다. A씨는 중상해를 입긴 했지만 치료기간이 길지 않아서, 살인사건 유족에게 주는 구조금 1억300만원만 지급됐다. 문제는 A씨가 지적장애라서 재산을 스스로 관리할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사건이 알려진 뒤 어머니와 이혼한 뒤 10년 넘게 연락이 끊겼던 A씨 아버지가 A씨를 돌보겠다고 나서긴 했다. 하지만 이미 재혼해서 생활관계가 단절돼있던 아버지에게 재산관리를 맡기기는 모호한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범죄피해자가 미성년자 등으로 재산관리 능력이 없는 경우엔 가까운 일가친척이 이를 맡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구조금이 온전히 피해자에게 쓰이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월 50만원씩 생활비로 나눠 지급

이에 인천지검은 A씨에 구조금을 지급하면서 조건 두 가지를 달았다. 하나는 A씨의 재산과 생활을 관리해줄 후견인을 선임할 것, 다른 하나는 신탁계약을 체결할 것이었다. 범죄피해자 구조금을 지원하면서 신탁계약 체결을 조건으로 붙인 건 처음이었다. 가정법원도 이러한 요청을 받아들였다.

지난 10일 오후 김재영 KEB하나은행 신탁사업단장(오른쪽)과 소순무 사단법인 온율 이사장이 범죄피해자 지원 신탁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사진 KEB하나은행]

지난 10일 오후 김재영 KEB하나은행 신탁사업단장(오른쪽)과 소순무 사단법인 온율 이사장이 범죄피해자 지원 신탁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사진 KEB하나은행]

A씨의 후견인이 된 공익사단법인 온율(법무법인 율촌 산하)은 10일 KEB하나은행과 범죄피해자 지원 신탁계약을 체결했다.

신탁계약은 말 그대로 신뢰할만한 금융회사에 재산을 위탁해서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계약이다. 앞으로 KEB하나은행은 신탁된 구조금을 안전한 자산으로 관리하면서 매달 A씨에 50만원씩 지급할 계획이다. A씨가 장애인을 고용하는 커피숍에서 일하면서 월급으로 기본 생활비를 벌고 있어서다.

만약 A씨가 목돈 사용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후견법인인 온율이 구조금을 일부 헐어 쓸지를 결정하게 된다. 구조금 사용내역과 지출계획은 검찰에 정기적으로 보고된다.

하나은행 '세월호 신탁'도 운영 중 

김재영 KEB하나은행 신탁사업단장은 “신탁은 흔히 자산가를 위한 상속 설계로 알려져 있는데, 보호가 필요한 계층의 재산 보호 수단으로도 활용도가 높다”고 말했다.

KEB하나은행은 ‘세월호 생존자 후견인 관리신탁’도 운영 중이다. 2014년 세월호 사건으로 부모와 오빠를 잃은 아동 앞으로 나온 보상금·보험금 등을 신탁으로 30세가 될 때까지 관리해주고 있다. 당시엔 아동의 후견인인 고모가 스스로 법원에 요청해 2017년 신탁계약 체결을 허가받았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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