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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영기의 시시각각

송현정과 누추한 촛불 민주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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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전영기
전영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전영기 중앙일보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칼럼니스트

행동이나 말, 생각이 쓸데없고 싱거울 때 ‘객쩍다’는 표현을 쓴다. 이낙연 총리가 자기 페북에서 좀 객쩍은 소리를 했다. 송현정 KBS기자가 집권 2년 차인 문재인 대통령과 가진 특별 대담을 보고 쓴 글인데 “신문의 문자는 ‘들을 문’자다. 그러나 많은 기자는 ‘물을 문’자로 잘못 안다. 근사하게 묻는 것을 먼저 생각하시는 것 같다. 잘 듣는 일이 먼저다. 동사로서 ‘신문’은 새롭게 듣는 일이다”라고 했다. 이 총리가 틀렸다.

이낙연 총리의 빗나간 언론관 #‘독재자’ 질문 했다고 군중 공격 #지금 군주의 나라에 살고 있나

신문(新聞)은 동사가 아니라 명사다. 독자가 새로운 소식을 듣는 종이 매체가 신문이다. 굳이 동사로서 ‘들을 문(聞)’자 신문을 얘기하고 싶다면 그 주어는 독자다. 독자가 듣는 것이다. 독자에게 새로운 소식을 들려주기 위해 기자는 묻는다. 기자가 묻지 않으면 취재원은 답하지 않는다. 새로운 소식도 나오지 않는다. 기자가 제대로 묻지 않으면 취재원은 건성으로 답하거나 자기에게 유리한 말, 혹은 거짓말부터 하기 일쑤다. 특히 권력자일수록 그렇다. 문재인 정부의 실권자들이 대체로 이런 경향을 띠고 있다는 건 지난 2년간 신물 나게 보아 왔다.

이 총리가 신문기자를 관둔 지 오래서인가. 감이 떨어진 듯하다. 그가 근무하던 언론사의 선후배 기자들은 독재자나 권위주의적인 취재원들에게 직설적이고 공격적으로 묻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나온 권력자의 눈빛과 표정, 태도와 얼떨결에 튀어나온 답변들이 독자가 듣는 새로운 소식이 되었다. 기자가 잘 들어야 하는 이유는 잘 묻기 위해서다. 경청은 수단일 뿐 질문이 목적이다. 이 총리는 이런 사정을 비틀어 훈계조로 송현정 기자를 비난했다. 아니 치열하게 취재하고 질문하는 기자 전체를 욕보였다. 이낙연의 궤변이 문 대통령이나 청와대, 소위 ‘문빠들’한테서 점수를 좀 땄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송 기자는 노무현 대통령 시대 청와대를 출입했다. 이때 청와대 참모였던 문 대통령과 생긴 친분이 특별 대담 인터뷰어로 선정된 배경이라고 한다. 노무현 정부 초기의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기개가 넘쳤다. 논리적이며 반문(反問)을 자주 하는 대통령한테 바보스럽게 당하지 않으려면 정책을 숙지해 때론 독하고 곤혹스러운 질문을 던져야 했다. 당시 청와대의 참모들도 보스의 기질을 닮았다. 지금처럼 단톡방을 애용하며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만 골라 하거나 무슨 청와대 국민청원 같은 괴상한 제도를 만들어 종종 집단적 언어폭력에 편승하는 비겁함도 없었다. 송 기자의 정중하면서도 시종 긴장을 자아내는 취재 태도는 개인 스타일이기도 하거니와 기본기가 노무현 청와대를 출입할 때 단련된 것이다. 송현정이 문 대통령과 개인 인연을 넘어 기자로서 물어야 할 것을 묻고, 답이 나올 때까지 여러 각도에서 파고든 자세에 동료 기자로서 안도감을 느꼈다.

송 기자는 “2년 전 문 대통령을 지지한 분과 반대한 분, 지지했지만 철회한 분, 뽑지는 않았지만 지켜보겠다는 분들의 다양한 시선을 담은 질문들을 드리겠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제1야당의 입장에서 보면… 대통령께 독재자라고 얘기하는 것 아니겠습니까”라는 물음이 나온 건 자연스럽고 당연했다. 문 대통령은 자세하게 답변함으로써 시청자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제공했다. 이런 식의 일문일답은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과 CNN 기자가 삿대질하면서 싸웠던 미국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자유민주 사회에서 대통령과 기자 사이에 항용 일어날 법한 일이다. 이를 두고 “불량스럽기 짝이 없는 무례한 질문”이라며 송 기자를 공격하는 댓글과 방송사의 사과나 해체를 요구하는 청원이 빗발치고 있으니 우리가 사는 곳이 1인을 태양으로 모시는 군주의 나라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2년이 만족스러운 모양인데,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언론의 자유가 군중 권력에 도전받고 있다. 촛불 민주주의가 누추해졌다.

전영기 중앙일보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