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탕물 덮인 들녁엔 한숨만 |기습 장대비…충남 농경지 2백만평 폐허화

푸른 들녘이 흙탕으로 변했다. 무릎까지 자란 벼 포기는 황토색으로 물든 채 나자빠졌고 싱그런 논은 자갈과 모래에 휩싸여 흔적마저 없다.
기상대도 예측 못한 채 16일 시간당 50mm의 장대비가 퍼부은 대전과 충남일대 농민들은 복구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망연자실하고 있다.
농경지피해는 충남이 침수 5백5ha, 유실 또는 매몰 67·19ha. 대전시는 1백1ha가 침수·매몰돼 피해면적은 6백73·19ha.
2백여만 평의 농경지가 수마에 할퀴어 농민들은 하루 새 8억 원이 넘는 날벼락 피해를 보았다.
봄 못자리에서부터 흘린 땀이 황토와 모래 등에 뒤덮여 삽시간에 잃고 올 농사를 망친 농민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눈앞이 캄캄하다.
피해가 가장 심한 곳은 충남 연기군 금남면 일대와 대전시 구즉 지역, 그저께만 해도 푸르던 들녘은 폐허의 황무지 같다.
연기군 대박동·박산동일대 이름난 박산들은 45ha가 침수되고 9·2ha가 매몰돼 모래밭이 됐다.
농경지 옆 소하천 37개소가 유실되면서 황토 물이 모래와 자갈을 품고 논으로 넘쳐들었기 때문이다.
대전시 구즉 지역도 인근 송강동·탑립동·관평동의 농경지 1백ha유실과 매몰로 4억여 원의 피해가 났다.
연기군 금남면 박산들 피해는 15, 16일간 2백30여mm의 집중호우로 인근하천인 삼성천이 범람해 피해를 가중시켰다.
구즉 지역인 탑립동·관평동· 송강동의 침수원인도 상류의 물길을 터줄 수 있는 수리시설 미흡이 주범.
매년 수해 상습지인 금남면 지역과 구즉 지역 피해원인은 집중호우의 영향이 크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당국이 이들 농경지에 대한 항구적인 수리안전시설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농민들은 발을 굴렀다.
금남지역의 경우 농로 22개소가 유실돼 주변 농경지를 휩쓸게 된 것은 연장 8km의 삼성천 20m가 16일 오전 급류에 무너지면서부터. 금년 초 경지정리를 마무리지은 이곳의 취약점은 40여 년 전의 제방을 그대로 두어 제방이 낡은 데다 굴곡이 심한 제방이 유속이 느려 제방 둑을 넓히지 않은 채 방치해 둔 것이 피해를 부른 근본 원인이다.
피해농민 양수직씨(52·연기군 금남면 박산리)는『박산들 농경지가 매년 침수가 잦아 지난해 12월 경지정리 때 수 차례 주민들이 하천 둑의 폭을 넓혀줄 것을 건의했으나 이를 묵살해 수해를 불렀다』고 핏발을 세웠다.
대전시 구즉 지역인 송강동·탐립동 피해원인은 저지대인데도 상류 소하천의 제방부실로 물이 넘쳤기 때문이라고 현지주민들은 말했다.
연기군 금남면 박산들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조용씨 (44) 는 『매년 삼성천 제방 둑이 노후되고 낮아 수해를 걱정했는데 이번 비로 6빽여 평의 논이 흙탕물과 모래로 매몰됐다』며 한숨지었다.
양씨도 『박산들의 농경지는 경지 정리지역이라 대부분 표토가 약한 곳으로 경지정리 시 논둑을 좁게 만들어 피해가 큰 것 같다』며 『자신의 논 8백여 평이 물에 잠기고 2백여 평이 매몰된 안타까움도 있지만 지난해 경지정리 시 둑 보수와 폭 넓히기 작업을 마련하지 않은 당국의 처사가 원망스럽다』고 했다.
김기룡씨 (35·연기군 금남면 대박리)는 논 1천8백여 평이 침수돼 금년농사를 망쳤다고 한숨지으며 『매년 기름진 농토에서 풍년을 가져왔는데 이제 매몰된 농경지에 모를 다시 심을 수도 없어 복구작업에 엄두도 못 내고 있다』며 『당초 경지정리시 성의 없는 공사가 빚어낸 인재』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또 『일단 침수됐던 논은 물이 빠진 뒤에도 벼 잎에 앙굼이 있어 수확시 소출이 크게 떨어져 수확도 하기 전에 날벼락을 당해 살길이 막연하다』고 말했다.
이같이 엄청난 수해로 농경지가 유실, 매몰되자 대전시와 충남도는 덤프트럭 30대, 마대 1천여개 등 장비를 동원, 무너진 제방 등에 대한 임시 긴급 복구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수해복구에 나선 당국의 장비가 부족하고 이미 피해를 본 농경지는 원상회복이 어려운 실정이다.
농민들은 당국이 경지정리 시 농민들의 요구대로 둑을 넓혔더라면 이번 수해를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 당국의 보상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대전=김현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