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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농축 재개" 꺼냈다… 미국, 핵항모 중동해역 급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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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란이 8일(현지시간) 지난 2015년 미국 등과 체결했던 핵 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의 일부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이란 핵합의를 탈퇴한 지 정확히 1년 만이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이날 오전 대국민 연설을 통해 “지난 1년간 이란은 최대한의 인내를 발휘했다”며 “핵 합의에서 정한 농축 우라늄과 중수(원자로 냉각수)의 보유 한도를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또 “유럽은 이란에 했던 경제적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며 “유럽이 60일 안에 이란과 협상해 핵합의에서 약속했던 금융과 원유 수출을 정상화하지 않으면 우라늄을 더 높은 농도로 농축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핵 합의 당시 약속했던 대이란 경제제재를 풀지 않을 경우 고농축 우라늄 등 핵 개발을 재개하겠다는 경고다. 이란 외무부는 이날 자국 주재 핵합의 서명국 대사관에 핵합의 이행을 축소한다는 내용을 담은 공식 서한을 발송했다.

미국의 합의 파기 1년 만에 핵위기 #이란 “우라늄 보유한도 안 지킬 것” #“목전에 다가온 공격징후 있었다” #독일 방문 전격 취소, 이라크행 #미국 관심·군사력 이란에 집중 #북한 비핵화 압박 약해질 수도

반면 미국은 이달 5일 에이브러햄 링컨 항모전단과 폭격기를 미 중부사령부 지역(중동)에 배치한다고 발표해 이란을 향한 무력시위를 예고했다. 미국 정부가 지난달 8일 이란 혁명수비대를 ‘외국 테러조직’으로 공식 지정한 데 따른 결정이다. 이로써 중동발 핵위기가 급속히 고조되고 있다.

2015년 7월 14일 6개국(미·영·프·독·러·중)과 이란이 맺은 이란 핵합의는 핵 개발을 포기하는 대가로 경제제재를 해제해 주는 내용이 골자다.

이란 일촉즉발, 폼페이오 발길 돌렸다

지난달 29일 지중해에서 미 해군이 찍은 에이브러햄 링컨 항모 전단 모습. 백악관은 5일 이 항모 전단을 중동으로 배치한다고 밝혔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지중해에서 미 해군이 찍은 에이브러햄 링컨 항모 전단 모습. 백악관은 5일 이 항모 전단을 중동으로 배치한다고 밝혔다. [로이터=연합뉴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인정하는 핵보유국 5개국과 독일이 이란의 핵 개발 프로그램을 중단시키기 위해 추진했다. 2년 넘게 순항했던 합의는 미국의 정권 교체와 함께 위기를 맞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임 오바마 행정부가 서명한 이란 핵 합의 내용이 불충분하다며 전격 탈퇴를 선언하면서다.

이후 미국은 대이란 압박 수위를 높여 왔다. 백악관이 지난해 8월과 11월 각각 이란 정부 달러화 구매 금지, 이란산 원유 수출 제한 등의 경제제재를 재개했고, 이달부터는 한국·중국·일본 등 8개국에 적용했던 이란 원유 수입의 예외적 허용도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이란 정부의 돈줄인 오일머니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로하니. [EPA=연합뉴스]

로하니. [EPA=연합뉴스]

이란은 트럼프 행정부의 이 같은 압박 조치에 대해 ‘핵 개발 재개’ 카드를 시사하며 맞대응을 예고해 왔다. 그러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이 7일 “불행히도 유럽연합(EU)과 국제사회는 미국의 압력에 맞설 능력이 없었다”며 “지난 1년간 미국의 핵합의 위반에 대해 우리가 유지한 ‘인내 전략’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다만 로하니 대통령은 연설에서 “만약 이란 핵 문제가 유엔 안보리에 다시 회부된다면 (이란은) 확실한 대응을 할 것”이라면서도 “테헤란은 이란 핵 프로그램에 대해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며 향후 협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란 핵합의 위기는 북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북한과 이란 모두 미국 정부를 향한 메시지는 동일하다. 각각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제재, 대이란 제재를 해제하라는 요구다. 이를 위해 북한은 지난 4일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쏘아올리며 미국에 경고장을 보냈고, 이란은 8일 핵합의 이행의 일부 중단을 선언하며 우라늄 고농축 가능성을 열어놨다. 하지만 현재까지 미국 정부는 북한보다 이란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은 군사도발을 하고도 미국의 칼끝을 피해 가는 상황이 돼 이란으로부터 ‘뜻밖의 도움’을 얻는 듯한 모양새가 됐다.

유럽 순방에 나섰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예정됐던 독일 방문 일정을 전격 취소한 뒤 7일 오후(현지시간) 이라크 바그다드에 나타났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라크행을 놓고 “목전에 다가온 (이란의) 공격 징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반면에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의 ‘섞어쏘기’ 도발을 놓곤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모라토리엄 위반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고 봐주기 발언을 내놨다. 미국이 당장은 북한 때리기보다 이란 조이기에 주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미국 외교에선 중동이 최우선 순위였던 만큼 트럼프 행정부 역시 이란 문제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일부 국방 전문가들은 미국이 항모 전단을 중동 해역에 보내면 서태평양에서 북한을 겨냥해 동일한 방식으로 압박하기엔 가용 자원이 부족하다는 전망도 하고 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학과 교수는 “미국이 관심과 군사 전력을 이란으로 집중하면서 상대적으로 북한에 소홀해지는 측면이 있다”며 “앞으로 이란 위기가 해소되지 않는 한 미국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압박하긴 힘들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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