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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모 넣고 정의선 빠진다? 김상조 '총수 지정' 초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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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 ‘총수(동일인)’ 지정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재계의 관심을 끈다. 10대 그룹 중 구광모(41) LG 회장이 LG그룹 새 총수로 이름을 올리지만, 현대차그룹 경영 전면에 나선 정의선(49) 수석부회장은 명단에서 빠질 전망이다. 30년 넘게 유지해 온 동일인 지정제의 적합성 논란도 불거졌다.

공정위는 9일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을 대상으로 ‘2019년 대기업 집단 지정 현황’을 발표한다. 관례대로 1일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달 8일 별세하면서 발표 일정이 뒤로 밀렸다. 학자 시절 ‘재벌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던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직접 명단을 발표한다.

올해도 삼성ㆍ현대차ㆍSKㆍLGㆍ롯데로 이어지는 재계 순위는 바뀌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LG(구본무)ㆍ두산(박용곤)ㆍ한진(조양호) 등 그룹 총수는 바뀔 가능성이 크다. 타계한 기존 총수를 대신해 각각 구광모 LG 회장, 박정원(57) 두산 회장, 조원태(44) 한진 회장이 뒤를 이을 것으로 예상한다. 40~50대 ‘젊은 피’로 세대교체다.

반면, 총수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는데도 불구하고 금호아시아나(박삼구)와 코오롱(이웅열)은 동일인 지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두 회사가 동일인 변경을 신청하지 않았고, 지분도 그대로라서다. 정의선 수석부회장도 핵심 계열사인 현대차ㆍ현대모비스 대표이사를 맡고 올해 처음 그룹 시무식을 주재하는 등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아버지 정몽구(81) 회장이 동일인 지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엔 이재용(51)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64) 롯데 회장이 각각 아버지를 대신해 삼성ㆍ롯데의 신규 동일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3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9일 '2019 대기업 집단 지정 현황'을 직접 발표할 예정이다. [뉴스1]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3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9일 '2019 대기업 집단 지정 현황'을 직접 발표할 예정이다. [뉴스1]

동일인은 정부가 공식 인정하는 대기업 ‘총수’다. 재계가 관심을 갖는 건 상징적 의미보다 공정거래법상 동일인(同一人)이 대기업 집단을 규정하고 시장지배력 남용,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등 규제의 ‘기준점’ 이라서다. 동일인을 기준으로 친족ㆍ비영리법인ㆍ계열사ㆍ임원 등 동일인 관련자의 범위를 결정한다. 기업집단 소속회사 범위도 동일인 범위를 기준으로 확정한다. 김성삼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동일인은 공정거래법에 따라 대기업집단에 공시 등 관련 자료를 제출할 의무를 진다”며 “허위 자료를 제출할 경우 고발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동일인과 ‘대표이사’는 뭐가 다를까. 쉽게 말해 대표이사가 ‘회사를 경영하는 자’라면 동일인은 ‘회사를 지배하는 자’다. 김 국장은 “동일인은 ‘월급쟁이 사장’과 ‘실질적 오너’를 가르는 법적 기준점”이라며 “공정위 동일인 지정에 재계가 관심을 보이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동일인은 공정위 기업집단국에서 정량ㆍ정성 조건을 반영해 지정한다. 정량 조건은 주식 ‘지분율’이고 정성 조건은 ‘지배적 영향력’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분율은 이건희 회장이 높지만, 동일인은 이재용 부회장이다. 정성 조건을 고려했다. 현대차의 경우 공정위가 지분율은 물론 지배적 영향력 측면에서 정몽구 회장이 여전히 정의선 수석부회장에 비해 높다고 판단한다면 기존 동일인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한진의 경우엔 고 조양호 회장 장남인 조원태 사장이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 2.34%를 갖고 있다. 딸인 조현아ㆍ현민 씨는 각각 2.31%, 2.30%를 들고 있다. 남매간 지분율에 큰 차이가 없어 지배적 영향력이 동일인 지정의 중요한 요건이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대기업 집단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동일인을 지정하는 게 필요한 절차"라며 "‘정성적’ 요건에 대한 규정이 명확지 않아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이 초청한 신년회에 국내 4대 그룹 총수가 처음 한 자리에 모였다. 사진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 구광모 LG 회장. [연합뉴스]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이 초청한 신년회에 국내 4대 그룹 총수가 처음 한 자리에 모였다. 사진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 구광모 LG 회장. [연합뉴스]

정부가 선진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동일인 지정제를 운용하는 건 한국 재벌의 폐해가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동일인 지정을 통해 순환출자ㆍ채무보증ㆍ일감 몰아주기 같은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행위를 규제하기 위해서다. 공정위는 1987년부터 대기업집단 정책을 시행하면서 동일인을 지정해왔다.

하지만 30여년 전보다 기업 환경이 많이 바뀐 데다, 경영 승계를 사실상 마무리했는데도 불구하고 기존 동일인을 유지하는 등 정부가 행정 편의를 위해 동일인 지정제를 운용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를 들어 대림(이준용)ㆍ효성(조석래)ㆍ동원(김재철)의 경우 경영 승계를 사실상 마쳤는데도 기존 동일인을 유지할 전망이다. 10대 그룹의 한 임원은 “회사에선 회장님으로 통하지만, 공정위 규제를 받을 때는 명예회장님 아들로 통하는 건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전문경영인 체계를 도입한 대기업에선 동일인 지정제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금은 창업자가 경영 일선에서 한발 물러난 네이버(이해진) 등이 예다.

정창욱 공정위 기업집단정책과장은 “회장이 경영권을 내려놨더라도 과거 금호처럼 경영권을 다시 회복하는 경우가 있다”며 “아버지가 아들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국 대기업 특성을 고려하면 정부로선 최대한 보수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포스코ㆍ농협ㆍKT처럼 자연인이 아닌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총수 없는 회사’도 있다”며 “시장 상황 변화를 반영해 동일인 제도를 운용하겠다”고 덧붙였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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