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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장사익 첫 서예전 "글씨 덕분에 노래를 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8일부터 생애 첫 서예작품전을 여는 우리 시대의 소리꾼 장사익.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8일부터 생애 첫 서예작품전을 여는 우리 시대의 소리꾼 장사익.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8일부터 한글흘림체 70점 

전화기를 타고 예의 구성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어쩌죠. 남우세스럽게 웃음거리나 안될지 모르겠네요. 혼자 낙서 직직거린 것 모아가지고 전시를 한다니. 하하하. 어떤 친구가 계속 졸라대서 ‘하겠다’고 대답은 했는데 요새 통 잠이 안 와요.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 같은데…. 하하하.”

장사익의 작품 '봄꽃'. [사진 글씨21]

장사익의 작품 '봄꽃'. [사진 글씨21]

음악 스승 김대환 선생의 유언

소리꾼 장사익(70)의 말이다. 그가 8일부터 서울 이화아트갤러러(이화백주년기념관 지하1층)에서 ‘낙락장서(落樂張書)-붓으로 노래한 장사익의 낙서’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를 걸었다.
“제가 글씨를 쓴 건 한 15년쯤 됐습니다. 제 음악의 스승인 김대환(1933~2004) 선생이 평생 반야심경을 썼거든요. 작은 쌀 한 톨에 반야심경 260여 자를 새긴 것으로 유명하죠. 그런 형님을 늘 옆에서 지켜봤는데, 형님이 돌아가실 적에 ‘사익아, 너도 한번 써봐라’고 권한 게 계기가 됐어요. 본래 저는 절차가 없는 사람이라, 한문은 힘들 것 같아 한글에 도전했죠. 그래, 한글 흘림체를 한번 써보자, 그때부터 한 게 지금까지 왔네요.”

장사익의 작품 '꽃구경'. [사진 글씨21]

장사익의 작품 '꽃구경'. [사진 글씨21]

장사익이 쓴 김승기 시인의 '역'. [사진 글씨21]

장사익이 쓴 김승기 시인의 '역'. [사진 글씨21]

매일 한두 시간씩 연습 계속

이번 전시는 장사익의 글씨가 대중에 본격 소개되는 첫 번째 자리다. 평소 노래 이상으로 그가 가깝게 즐겼던 소박하면서도 자유로운 글씨를 보여준다. 노래도 그렇지만 글도 사람을 닮는다고 했다. 장사익의 글씨는 무심한 듯 에너지가 넘친다. 일명 ‘장사익체’로 불린다. 본인 스스로는 “낙서처럼 죽죽 흘려 내렸다. 까불거리며 썼다”고 겸손해했지만 나름 오랜 세월 단련된 힘과 기백을 담겨 있다. 단순 취미 이상의 수준급 솜씨다.

무턱대고 쓴 건 아닌 것 같다.
“어려서부터 한문 천자문은 계속 썼어요. 한글 흘림체는 새로 시작한 것이고요. 쓰다 보니 재미가 생기고, 남들에게 한두 점 선물도 하게 됐습니다. 공연 포스터 글씨와 CD 표지 글씨도 전부 제가 쓴 겁니다.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도 붓글씨로 썼고요. 2007년 한글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 선생이 내 편지를 옷에 프린트해서 프랑스에서 히트를 친 적도 있었죠.”
문화동네에선 제법 알려진 얘기죠.
“사실 어렸을 적부터 한문을 조금 배웠어요 서당도 다녔지요. 우리 세대는 초등학교·중학교 때까지 습자(習字)도 하고 붓글씨를 배웠습니다. 또 제가 상고 출신이라 이력서를 쓰기 위해 펜글씨도 많이 익혔습니다. 그런 인연이 있어 지금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글씨 선생님을 두진 않았나요.
“딱히 누구에게 따로 배운 적은 없어요. 그냥 혼자 한 거죠. 특정 작가의 글씨는 연습한 적도 없고요. 다만 조선 후기 서예가 중에 이삼만(1770∼1847) 선생이 계세요. 유수체(流水體)라고 한문 흘림체(초서)가 뛰어나셨죠.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만큼 유명하진 않으셨지만 그 분의 글씨가 맘에 들었습니다. 한문 흘림체는 수천 년 됐지만 한글도 연구하면 세계적으로 훌륭한 글씨가 될 수 있을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제 나름의 작은 바람이죠. 하하하.”
장사익의 작품 '꽃'. [사진 글씨21'.

장사익의 작품 '꽃'. [사진 글씨21'.

한글의 아름다움 더 알려졌으면

오는 14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총 70여 점이 나온다. 소리꾼 장사익의 소소한 일상, 그의 집마당 들꽃 이야기, 글씨 쓸 때의 심경 등을 담았다. 우리가 잘 몰랐던 장사익의 숨겨진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노래와 글씨, 둘을 비교한다면.  
“아무래도 노래가 조금 더 쉽죠. 하지만 글씨는 제가 정말 편하게 즐겨왔어요. 아무 생각 없이 물에 먹을 풀어 신문지에 한 자든, 두 자든 적을 수 있으니까요. 밥 먹고 나거나, 시간이 비거나 아무 때나 할 수 있잖아요. 그래도 하루에 한두 시간은 꼭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손에 힘이 붙더라고요. 낙서(落書)가 낙서(樂書)가 됐습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느라 힘들었습니다. 악서(惡書)가 되지 않았나 모르겠어요.”
그래도 글이 노래에 도움이 되겠죠.
“노래는 신경 써서 힘들게 부르지만 글씨는 마음 편하게 씁니다. 꼬맹이들도 연필만 들면 벽에다 낙서를 하잖아요. 사람들에게는 글씨를 쓰려는 욕구가 있는 것 같아요. 하얀 것만 있으면 뭔가 쓰고, 색칠하고 싶어 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잡하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냥 물에 먹을 묽게 풀어 신문지 앞에 앉습니다. 아무 거리낌없이 흘려 쓰지요. 그래서 더 위안이 되는 것 같아요. 전시 때 꼭 놀러 오세요. 하하하.”

박정호 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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