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미와 직접 대화 노린 극약 처방…'제재 강화' 비싼 대가 치를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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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미사일을 발사대에 올려 놓고 미국의 반응을 저울질하고 있던 6월 29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북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회담을 끝내고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부시와 고이즈미는 북한에 미사일 모라토리엄을 지키라고 촉구했다. 이 정도는 원론적인 주문이다. 북한에 보내는 진지한 메시지는 공동기자회견에서 나왔다. 부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용납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부시와 고이즈미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다양한 압력을 행사하겠다고 말했다.

부시와 고이즈미가 보인 반응은 북한을 실망시켰을 것이다. 미국 본토에까지 도달할지도 모르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겠다는데도 미국은 북한과의 양자회담을 거부했다. 북한은 극약처방이 아니고는 부시 정부와의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미사일 발사를 강행했을 것이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면 부시가 법석을 떨면서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과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에게 전화를 걸어 긴급대책을 논의할 것이라고 기대했다면 그것도 어긋났다.

미국과 일본은 여유를 보이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본토의 서부에 도달할 능력을 가진 대포동 2호 발사가 실패했다면 그것으로 좋고, 대포동 2호가 북한의 계산된 실패라고 해도 미국이 당장 안보상의 위협을 받지는 않는다. 일본 역시 일곱 개의 미사일이 모두 러시아의 연해주에 가까운 곳에 떨어진 사실에서 북한의 의도는 군사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라는 해석을 내리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부시에게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좋은 선물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 구축과 일본의 대북 경제제재에 호재(好材)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로 미국과 일본의 대북 협상파들의 입지가 약화된 데 대해 비싼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 규탄 결의를 이끌어내 대북 경제제재의 고삐를 더욱 조이는 방식을 모색할 것이다. 북한이 무서워하는 것은 유엔을 통한 제재보다는 미국의 직접적인 제재의 강화다.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북한에 제공되는 외부지원의 상당부분을 저지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재빨리 북한 선박의 6개월간 입항금지 조치를 내렸다. 조총련의 대북 송금에까지 제한조치가 내려지면 북한이 받을 타격은 작지가 않다.

중국은 북한 미사일 발사의 큰 피해자다. 북한에 미사일을 발사하지 말라고 압력을 가해 온 중국의 체면이 크게 손상됐다. 그러나 더 큰 피해자는 한국 정부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몽골에서 북한에 더 많은 양보를 하고, 제도적.물질적 지원을 조건 없이 하겠다고 선언했다. 지금 노 대통령이 몽골 발언에 집착한다면 한.미, 한.일 관계는 최악으로 후퇴하고 6자회담 재개는 더욱 멀어질 것이다. 미국은 재빨리 미사일 사태는 북.미 간의 문제가 아니라 6자회담 참가국 전체의 문제라고 못을 박았다. 한국의 독자적인 행동을 미리 견제하는 말도 된다. 한국 정부는 북한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한 경고를 실행에 옮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쌀.비료와 새로 논의되는 경공업 원자재의 제공은 그 양과 시기를 조절해야 한다. 남북대화의 틀을 깨지 않는 범위 안에서 북한에 제재를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이 발사한 것은 정치적인 미사일이다. 미국과 대화하자는 메시지에 무게가 실렸다. 한국의 대응도 여기에 맞춰져야 한다. 북한에 강.온의 대응을 적절히 섞어 쓰면서 동병상련의 입장에 빠진 중국과 역할분담을 해 미국으로 하여금 6자회담의 틀 안에서라도 북한과 대화를 재개하도록 외교적 총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일본과의 공조 회복을 위해서는 독도 주변 해류조사를 중지하든지 빨리 끝내야 한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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