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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속초 산불 20일 지나 공개 사과한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4일 오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사무소를 찾은 고성·속초 산불 피해 이재민들이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에게 사과와 과실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박진호 기자

24일 오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사무소를 찾은 고성·속초 산불 피해 이재민들이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에게 사과와 과실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박진호 기자

한국전력 김종갑 사장이 고성·속초 산불 발생 20일 만에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에게 공개 사과했다. 김 사장은 24일 오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사무소에서 산불 피해를 본 이재민들에게 “고성·속초 산불로 이재민과 국민 여러분께 심려 끼쳐 죄송하다”며 “며칠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감정 결과를 통해 한국전력이 관리하는 설비, 아크 불씨가 화재의 원인이 됐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번 산불이)한전 설비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한전 “형사적 책임 없다고 해도 민사적 책임지겠다” #주민들 “이재민 갈 곳 없다, 작은 집이라도 지어줘야”

그는 “국과수의 감정 결과 따라 경찰이 수사하고 있고 저희는 수사에 성실히 임하고 있다. 수사 결과가 나오면 여러 가지 논의가 있겠지만 한전은 수사 결과 형사적 책임 여부 관계없이 대책위, 지자체와 협의해 한전이 어떤 조치를 해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겠다”며 “이재민들이 하루속히 일상을 되돌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앞으로 합당한 조치를 하도록 최선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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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사무소를 찾은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이 고성·속초 산불 피해 이재민들에게 공개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 고성군]

24일 오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사무소를 찾은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이 고성·속초 산불 피해 이재민들에게 공개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 고성군]

한전의 입장 발표 이후 한 쪽에선 “어떻게 사망자에 대해서는 사과 한마디를 안 하냐, 돌아가신 게 언제인데…”라는 등의 고성이 나왔다. 이에 김 사장은 “별도로 유가족 찾아뵙고 사죄드리겠다. 성실히 의무를 다하겠다”고 답했다. 이어 주민들이 “누가 봐도 한전 전신주에서 불이 시작됐는데 원인 제공했으면 손해배상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이런 지원 문제는 당연히 책임져야 한다. 수사 결과에 따라 한전 책임 범위가 달라지지 않겠나, 형사적으로 책임이 없다고 해도 민사적 책임을 지겠다”고 설명했다.

한전이 명확한 대책을 내놓지 않자 곳곳에서 욕설과 고성이 터져 나왔다. 정준화 설악권번영회장협의회장은“경찰 조사 운운하는데 경찰 조사도 필요 없는 얘기다. (사고가 난) 고압선은 2006년부터 안 갈았다. 좋은 가죽 신발도 햇빛에 놔두면 5년 못 간다. (한전 설비가) 끊어졌으면 사장이 그 날 즉시 내려왔어야 한다”며“이재민들 보라 갈 곳 없다. 한전 사장이 이재민들에게 당장 어떤 보상을 해주겠다. 이런 게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산불로 211㎡의 주택을 잃은 김경동(68)씨는 “보상금 1300만원 받고 대출 6000만원 받아서 집을 지으면 빚만 더 늘어나는 꼴”이라며 “이재민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15~20평 되는 작은집이라도 지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7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 마을에서 한 주민이 산불로 엉망이 된 집안을 살피고 있다. [뉴스1]

지난 7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 마을에서 한 주민이 산불로 엉망이 된 집안을 살피고 있다. [뉴스1]

이재민들의 의견을 들은 김 사장은 토성농협에 마련된 고성지역 산불비대위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비대위 위원들과 30여분간 대화를 이어갔다. 노장현 비대위원장은 “한전과 비대위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 대화와 접촉을 통해 배상문제 등을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며 “하지만 한전과 대화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그 즉시 상경 투쟁 등 강경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고성지역 비대위원들과 간담회를 마친 김 사장은 한전 속초지사로 이동해 속초지역 산불 이재민을 만나 사과했다.

앞서 강원지방경찰청은 축구장 1000여개 규모인 700㏊의 산림과 삶의 터전을 앗아간 강원 고성·속초 산불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지난 23일 한국전력 속초지사와 강릉지사 등 2곳을 압수 수색을 했다. 현재 경찰은 산불 원인이 된 전신주의 설치와 점검, 보수 명세 관련 서류 일체를 분석 중이다.

한편 고성·속초 산불과 관련, 한전의 책임 인정과 보상을 요구하는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 22일 ‘고성 한전 발화 피해보상을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에는 현재 4286명이 동의한 상태다. 이번 산불로 고성과 속초에서는 주택 550채가 불에 타 이재민 1132명이 발생했다. 이재민들은 현재 임시주거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고성·속초 산불은 지난 4일 오후 7시 17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에서 발생했다.

고성=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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