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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결수 박근혜와 보석 허가된 김경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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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가영
이가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가영 사회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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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기결수 신분으로 전환된 17일, 김경수 경남지사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자유한국당 등이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호소하는 와중에 김 지사는 서울구치소를 나섰다. 현행법상 박 전 대통령은 보석이나 사면의 대상이 아니다. 아직 진행 중인 재판이 있고, 이 재판의 구속 기간은 끝났지만 동시에 이미 확정된 선거법 위반 징역형의 집행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구속된 피의자라도 기소된 뒤엔 방어권 보장을 위해 보석을 허가해야 한다는 원칙에 찬성한다. 요즘처럼 주요 사건에서 검찰이 물량 공세 수준의 자료와 기록을 쏟아붓는 상황이 이어지는 때는 더더욱 그렇다. 김 지사나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라면 보석 허가가 타당한 측면이 있다.

다만 김 지사의 보석을 바라보는 우려의 눈길이 있다는 건 정치권이나 사법부가 새겨야 할 대목이다. 재판부는 2억원의 보증금과 함께 여러 보석 조건을 달았다. 드루킹 세력들과의 접촉을 금지했을 뿐 아니라 증거인멸과 도주도 못하도록 했다. 현실적으로 김 지사가 도주를 시도하지는 않겠지만 증거인멸에 대해선 의문을 품는 이들이 있다. 드루킹 사건이 불거질 당시 청와대 인사들과 드루킹 세력 간의 연관성과 접촉 사실이 알려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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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킹을 김 지사에게 소개한 사람은 송인배 전 정무비서관이었고, 김 지사로부터 SOS를 받은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은 드루킹 측 인사를 직접 만났다. 두 사람이 이 일로 기소되진 않았지만 김 지사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려 청와대가 나서서 뛰었다고 의심하는 국민들이 상당수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여당이 전부 나서 ‘김경수 구하기’에 올인하고 사법부를 압박한 결과가 아닌가”라며 “국민이 공정하다고 느낄까”라고 말했다.

보석 기간 김 지사에게 유리한 사정 변경이라도 생기고 이것이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면 보석 결정을 두고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특혜’라는 비판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런 만큼 김 지사의 보석 결정이 “사법부를 바로 세우겠다”며 수차례 다짐한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의 오점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런 가운데 17일 오후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가 박 전 대통령의 형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의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지난해 8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박 전 대통령의 보석 청구에 대한 건의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썼다. 형집행정지 결정은 심의위가 담당한다. 김 지사의 보석 결정과 맞물려 자칫 불공정 시비나 또 다른 정치적 갈등의 불씨로 이어지지 않도록 ‘법의 원칙’이 지켜지길 기대한다.

이가영 사회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