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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판사판’싸우는 고수 없다… 승부는 바꿔치기에 있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정수현의 세상사 바둑 한판(24)

'태산명동서일필'이란 태산이 흔들리듯 싸움이 요란했는데 나중에 보니 생쥐 한 마리 지나간 정도의 미동에 그쳤다는 뜻이다. 이 한자성어는 고수들의 문제 해결 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태산명동서일필'이란 태산이 흔들리듯 싸움이 요란했는데 나중에 보니 생쥐 한 마리 지나간 정도의 미동에 그쳤다는 뜻이다. 이 한자성어는 고수들의 문제 해결 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예전에 신문이나 잡지에 바둑해설을 쓰던 관전기 작가들은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라는 말을 즐겨 썼다. 이 말은 태산이 흔들리듯 싸움이 요란했는데, 나중에 보니 생쥐 한 마리 지나간 정도의 미동에 그쳤다는 뜻이다.

이 한자성어는 고수의 문제 해결 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수들의 바둑을 보면 사느냐 죽느냐 하는 치열한 싸움을 벌이다가도 종국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적당히 거래하며 싸움을 평화롭게 마무리하는 것이다.

싸우면서 거래하는 바둑 게임 

바둑은 영토전쟁의 게임이다. 그래서 침입, 공격, 탈출, 포획 등과 같은 전쟁용어가 많이 사용된다. 적군을 사로잡아 포로를 많이 확보하면 몸값을 받기도 한다. 이처럼 전쟁을 위주로 하는 바둑이지만 한편으로 ‘거래’라는 말도 사용한다. 바둑 두는 사람들은 싸우면서도 끊임없이 거래하는 셈이다. 상대방과 거래를 하지 않고 싸움만 하려고 한다면 결코 좋은 바둑을 둘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인간사회도 전쟁이자 거래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매일 누군가와 경쟁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또한 끊임없이 거래한다. 쉬운 예로 정치판을 보자. 여당은 야당을 공격하고 야당은 여당을 공격하는 싸움을 숱하게 본다. 하지만 여야 의원들은 나중에 서로 주고받으며 싸움을 끝낸다. 타협하지 않고 계속 싸움만 하고 있으면 국민은 비난의 화살을 보낸다.

바둑에서 거래의 법칙을 잘 보여주는 말이 있다. 그것은 ‘바꿔치기’ 또는 ‘교환’이라는 용어다. 바꿔치기를 영어로는 ‘trade’나 ‘swap’이라고 한다. 바둑의 고수는 바꿔치기에 능하다. 그래서 “원성진, 커제에게 지옥의 바꿔치기 선사”, “이세돌, 바꿔치기 실패”와 같이 바꿔치기라는 말이 흔하게 사용된다. 바꿔치기는 상대방에게 어떤 이익을 주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물물교환이다.

고수와 하수 차이는 바꿔치기  

고수와는 달리 하수는 바꿔치기에 서툴다. 바꿔치기라는 개념이 없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상대방과의 싸움을 처리하기 힘들 것이다. 서로 이익을 나누는 바꿔치기를 하지 않고서는 싸움을 조용히 끝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에겐 이판사판으로 누가 죽나 보자는 싸움만이 기다리고 있다.

바둑에서 거래나 바꿔치기가 흔하게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렇다면 거래를 할 때 나의 이익과 상대방의 이익을 어느 정도로 나눌까. 가능하다면 내 이익을 극대화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놀부처럼 혼자 이익을 독차지하려고 하거나, 폭리를 취하려고 하면 상대방이 거래에 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둑에서 거래나 바꿔치기는 흔하게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거래를 할 때 나의 이익과 상대방의 이익을 어느 정도로 나눌까? 가능하다면 내 이익을 극대화하고 싶은게 인지상정이겠지만 그렇다면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뉴스1]

바둑에서 거래나 바꿔치기는 흔하게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거래를 할 때 나의 이익과 상대방의 이익을 어느 정도로 나눌까? 가능하다면 내 이익을 극대화하고 싶은게 인지상정이겠지만 그렇다면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뉴스1]

따라서 고수들은 보통 5대5나, 6대4 정도로 거래한다. 서로 이익이 엇비슷하거나, 상대방보다 나의 이익이 조금 많은 거래를 시도한다. 물론 유리한 상황에서는 7대3 정도의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흑 백의 이익 비슷한 정석  

정석(定石)은 이러한 거래의 전형이다. 바둑에서 정석은 흑과 백이 모범적으로 둔 수순을 뜻하는데, 서로의 이익이 엇비슷하지 않으면 그 정석은 바둑 시장에서 퇴출당한다. 불리한 쪽에서 그 정석을 두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석의 거래에서는 기득권이 고려된다. 먼저 땅을 차지하고 있는 쪽이 약간 유리하게 거래가 된다. 극장에서 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이 우선권을 가진 것처럼 바둑판에서도 먼저 위치를 점령한 사람이 유리한 입장에 선다.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이익을 얻는 것은 아니고 약간의 프리미엄을 갖는다.

바둑에서 싸움을 적당한 거래로 해결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살면서 분쟁이 생겼을 때 거래적 사고방식으로 대응한다면 싸움을 원만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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