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 달 만에 뒤집힌 섣부른 경기 낙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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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1호 30면

기획재정부가 어제 발간된 ‘최근 경제 동향(그린북)’에서 우리 경제의 하방 리스크를 지적했다. 생산·투자·소비 등 주요 실물 지표가 부진한 흐름을 보인다고 우려했다. 한 달 전 일부 지표 호전을 근거로 썼던 ‘긍정적 모멘텀’이란 표현은 삭제했다. 괜찮다던 경제가 그사이 고꾸라졌을 리 없다. 실은 한 달 전 진단이 잘못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 설 특수로 반짝 좋아진 지표를 두고 확대 해석한 결과였다. 기재부가 섣부른 낙관론을 펼 때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경기 둔화가 지속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잘못된 진단은 잘못된 처방을 낳는다. 기재부의 낙관을 근거로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가 견실한 흐름을 보이며 개선 중”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발언 불과 며칠 뒤 생산·투자·소비 3대 지표가 일제히 내리막을 보였다는 통계가 나왔다. 문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은 세계적으로 족보가 있는 이야기”라는 말도 했다. 냉철한 경제 현실 진단이 있었다면 나오기 힘든 이야기다. 한 달 만에 뒤집힌 황당한 낙관론은 소득주도성장 정책 효과를 강변하려다 빚어진 희극이 아니고 뭐겠는가.

기재부 입장 변화가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위한 분위기 조성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추경이 없으면 올해 정부가 세운 성장목표 2.6~2.7%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추경이 편성되면 현 정부 들어서만 벌써 3번 째다. 이쯤 되면 가히 재정 중독이다. 또 재정에 기대기 전, 경제 정책 기조에 문제없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년 총선을 의식한 돈 풀기라는 의심이 불가피하다.

보고 싶은 것만 봐서는 확증 편향만 강화될 뿐이다. 냉철한 지표 관리가 본업인 경제 부처마저 집단 최면과 희망 사고에 젖어 현실을 제대로 못 보고 있다. 계속되면 가계·기업 등 경제 주체들의 진짜 희망이 없어진다. 건강한 조직이나 기업들이 의도적으로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악마의 대변인’까지 두는 이유를 생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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