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19)
나문희, 심은경 주연의 영화 ‘수상한 그녀’는 강렬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 주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 영화처럼 어머니들에게 청춘이 두 번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애들 다 키우고 홀가분해졌을 때 하고 싶었던 것, 맘속에 담아 두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들 하나를 소중히 키워 온 어머니. 그러나 그 아들은 어머니만을 바라보며 살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가족들이 하는 양로원 이야기를 듣게 되고 절망한다.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던 아들이 나를 버리려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집을 나온다. “내게 다시 청춘이 주어진다면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던 어머니는 눈앞에 보이는 ‘청춘사진관’으로 들어간다. 사진을 찍고 밖으로 나온다. 그런데 이상하다. 버스 유리창에 비친 모습은 나이 들어 쇠약해진 모습이 아닌 아리따운 아가씨였다. 스무 살 꽃처녀. 꿈같은 청춘이 시작된다.
서울행 비행기에서 본 영화 ‘수상한 그녀’
이 영화를 본 것은 2014년 11월 14일. 도쿄에서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 안이었다. 그때 내 나이 49세. 두 번째로 맞이할 청춘을 준비하기 위해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만 원짜리 책 쓰기 특강을 듣는 목적도 있었다. 내 부모처럼 모셔야지 했던 시부모도 남편도 내 자식들도 다 필요 없다. 쉰 살부터 나를 위해 살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제2의 청춘을 만끽하고 있다. 제1의 청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큰아들이 중학교 다닐 때부터 시작된 아홉 명의 친구 모임이 있다. 둘은 벌써 환갑을 넘겼다. 제일 나이가 어린 친구는 띠동갑 정도로 떨어져 있어서 아직 40대다. 그러나 나이 차이를 느끼는 일은 거의 없다. 얼굴 주름 이야기를 할 때 빼고는. 생일파티를 하고 핼로윈 파티를 열며 같이 여행도 다닌다.
올해 2월에 환갑을 맞이한 친구는 뇌 수술을 두 번씩이나 받았다. 처음 수술을 받을 때는 어찌 될지 모르니 모임에서 빠지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으나 우리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술 전과 후에는 응원 메시지를 보내며 격려했다. 친구는 기분 전환이 됐다며 얼굴 보고 수다 떨 생각을 하면 힘이 난다고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수술. 병문안 봉투는 한번 받았으니 받기 싫다고 했다.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야 없지. 큰 수술을 두 번씩이나 했거니와 환갑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퇴원과 환갑을 축하하는 특별 버전으로 ‘아타미 온천 합숙’을 가기로 했다. 우리가 아주 가끔 이용하는 호텔 그란바하. 환갑과 퇴원 축하 모임이라고 누누이 설명하며 예약을 했다.
주인공 친구는 결혼 후 가족 이외의 사람과 여행은 처음이라고 했다. 환갑을 맞아 처음으로 자유로이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친구. 제2 청춘의 시작이 아니고 뭐겠는가. 그녀는 이번처럼 행복한 생일은 없었다며 자기 안에서 무언가 꿈틀대기 시작했다고 들뜬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까지 행복에 젖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 앞으로는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자. 큰 병을 앓고 죽을 고비를 넘겼잖아. 이제부터는 자기를 위해서 살아.’
친구들로부터 축복받는 60번째 생일. 벌써 환갑인가 하고 처지던 기분이 밝아졌다고 했다. 남편에게 자랑하겠다며 사진을 찍어댔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키웠다. 시부모를 모시고 있지만, 이제는 자기를 위해 살 용기가 생겼다는 친구. 대수술로 죽을 고비를 넘기며 수명은 나이 차례가 아님을 실감했다고 한다. 우리는 서로의 환갑만큼은 특별하게 축하해 주기로 했다.
일본에서는 환갑 때에 ‘찬찬코(ちゃんちゃんこ)’라는 빨간 조끼와 모자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 찬찬코는 민소매 배냇저고리 같은 것으로 빨간색에는 귀신을 쫓는 힘이 있다 해 아기 옷에 쓰였다. 환갑은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에서 아기로 돌아 간다라고 해, 빨간 조끼와 모자를 선물하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하지만 100세 시대에 찬찬코를 선물 받고 기뻐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제 환갑은 장수의 의미보다는 인생의 한 획을 긋는 의미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환영받지 못한다는 그 찬찬코를 우리는 재미 삼아 준비했다. 2년 전에 환갑을 맞이한 친구 때에 사 놓은 것인데 아홉 명이 끝날 때까지 돌려 입을 것이다. 자축하는 의미에서 용기를 내어 빨간색 원피스를 사 입었다는 친구. 찬찬코를 입고는 마치 ‘오트 쿠튀르(맞춤옷)’ 같다며 더없이 환하게 웃었다.
50에 시작된 나의 제2의 청춘. 환갑을 맞아 제2의 청춘을 시작한 친구. 100세 시대에 살게 된 것을 다행이라고 여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수상한 그녀’에서의 말을 떠올려 보자. “내게 다시 청춘이 주어진다면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살고 싶다.” 우리는 다시 한번 청춘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가능한 한 후회 없도록 원 없이 살아보자. 100세 시대. 아직 50대인 주제에 감히 말한다. 환갑은 인생을 제대로 살아볼 출발점이다.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