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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9개월이 남았다, 올해의 목표는 충분히 유효하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전새벽의 시집읽기(31)

올해도 벌써 4개월이나 지났다. 새해 목표를 세운 분들이라면 중간 점검을 해보기 좋은 시기이다. 프리랜서 조상희

올해도 벌써 4개월이나 지났다. 새해 목표를 세운 분들이라면 중간 점검을 해보기 좋은 시기이다. 프리랜서 조상희

올해도 벌써 3개월이나 지났다. 새해 목표를 세운 분들이라면 중간 점검을 해보기 좋은 시기일 것이다. 자, 목표에 대한 1분기 성적은 어떠신지? 만일 통 지키지 못하고 지냈다면, 다음의 시가 조금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다.

1월엔 뭐든지 잘될 것만 같습니다
총체적 난국은 어제까지였습니다
지난달의 주정은 모두 기화되었습니다
2월엔
여태 출발하지 못한 이유를
추위 탓으로 돌립니다
어느 날엔 문득 초콜릿이 먹고 싶었습니다
3월엔
괜히 가방이 사고 싶습니다
내 이름이 적힌 물건을 늘리고 싶습니다
벚꽃이 되어 내 이름을 날리고 싶습니다
어느 날엔 문득 사탕이 사고 싶었습니다.
4월은 생각보다 잔인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한참 전에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5월엔 정체성의 혼란이 찾아옵니다
근로자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니고
어버이도 아니고
스승도 아닌데다
성년을 맞이하지도 않은 나는,
과연 누구입니까
나는 나의 어떤 면을 축하해줄 수 있습니까
(…)
다시 1월,
올해는 뭐든지 잘될 것만 같습니다
1년만큼 더 늙은 내가
또 한번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2월에 있을 다섯 번의 일요일을 생각하면
각하(脚下)는 행복합니다
나는 감히 작년을 승화시켰습니다
-오은, 「일년」 부분.

시인은 우물쭈물하다가 1년을 보내 버리고만,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이다. 그래서 정이 간다. 다들 이렇게 허송세월하면서 잘만 살고 있구나, 싶어서 안심도 된다.

1982년생인 오은 시인은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카이스트 문화예술대학원에서 석사를 했고 이후에 빅데이터 회사에서 근무했다. 시인으로서 흔한 이력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인지 시가 조금 남다르다. 쉽고, 일상적이고, 조금 유머러스하다.

오은 시인은 평소 자신의 시 쓰기 방식을 '말놀이'라고 표현하는데 그가 발간한 연구서 『너는 시방 위험한 로봇이다』나 산문집 『너랑 나랑 노랑』이라는 제목을 보면 그가 문학을 대하는 마음을 알 수 있다.

오은 시인은 평소 자신의 시 쓰기 방식을 '말놀이'라고 표현하는데 그가 발간한 연구서 『너는 시방 위험한 로봇이다』나 산문집 『너랑 나랑 노랑』이라는 제목을 보면 그가 문학을 대하는 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평소 자신의 시 쓰기 방식을 ‘말놀이’라고 표현하는데, 그가 발간한 연구서 『너는 시방 위험한 로봇이다』나 산문집 『너랑 나랑 노랑』이라는 제목을 보면 과연, 그가 문학을 명랑한 마음으로 대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시인 얘기는 이쯤 하고, 다시 새해 계획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 필자, 평소에 “목표는 주변에 널리 알려라”는 조언을 많이 듣고 자랐다. 다른 사람에게 얘기함으로써 목표를 잊지 않고 의지를 더 갖게 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꼭 좋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심리학자인 피터 골위처(Peter Gollwitzer)를 비롯한 여러 학자는, 목표를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지 말라고 한다. 실험에 따르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목표를 알아주고 이해할 때, 이미 우리의 마음속에 만족이 생겨 목표를 이루려는 의지가 약해진다는 것이다. 이때 우리에게 생기는 만족감은 ‘사회적 실제(social reality)’라는 것으로, 이미 목표를 이룬 것 같은 착각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올해도 9개월 남았다. 지난 3개월간 특별히 이룬 게 없다면, 다시 한번 목표를 다짐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엔, 아무에게도 그 목표를 말하지 말아보자. 그렇게 해서 작년을 승화시키는 일 같은 건 하지 말고, 진짜 성취감을 느껴보자. 그런 고로, 필자의 새해 목표도 여러분께 밝히지 않는 바이다.

전새벽 회사원·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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