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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유리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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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제과점 앞을 지나던 불량배가 유리창을 깼다. 가게 주인은 놀라 달려나갔지만 불량배는 달아났고, 피해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주인은 깨진 유리창을 종이로 적당히 가리고 그냥 넘어갔다. 얼마 후 가게 앞엔 쓰레기가 쌓이고, 벽에 낙서가 생겼다. 그러자 손님들이 점차 줄더니, 제과점 주변은 어느새 불량배들의 싸움판이 됐다.

미국의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은 이 같은 도시범죄의 증폭 현상에 주목하고 1982년 '깨진 유리창'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건물 주인이 깨진 유리창과 같은 사소한 피해를 방치하면 절도나 폭력 같은 더 큰 강력범죄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깨진 유리창을 본 사람들은 건물주가 건물을 포기했다는 인상을 갖게 되고, 시간이 가면서 이곳이 점차 '무법천지'라는 인식을 굳히게 되기 때문이다. 작은 무질서와 하찮은 범죄를 가볍게 여기면 심각한 범죄로 발전한다는 이론이다.

홍보와 마케팅 전문가인 마이클 레빈은 이 이론을 경영학에 응용해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고안했다. 기업이 사소한 실수와 미비점을 방치하면 예기치 않은 손실과 치명적인 경영실패를 부른다는 것이다. 칠이 벗겨진 매장 벽, 더러운 화장실, 한 명의 불친절한 직원 등 작고 사소한 기업의 실수를 방치하면 결국 거대 기업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범죄학이든 경영학이든 '깨진 유리창'은 바로바로 손봐야 한다는 메시지다.

경제학에선 일찍이 19세기 중반에 깨진 유리창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프랑스 국가재건위원이었던 생샤망(1777~1861)은 유리창을 갈아 끼우면 빵 가게 주인은 손해를 보겠지만 유리가게 주인이 그만큼 덕을 보기 때문에 국민경제적 손실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심지어 유리가게 주인의 지출로 새로운 소득이 창출되기 때문에 유리창을 깨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폈다. 이에 대해 자유주의 경제학자 클로드 프레데릭 바스티아(1801~1850)는 유리창이 깨지지 않았다면 그 돈을 다른 데 썼을 것이기 때문에 유리가게 주인의 이득은, 다른 업자의 기회손실에 불과하다고 논박했다. 국민경제 전체로는 소득이 더 늘지 않고, 깨진 유리창만큼 국부가 감소했다는 것이다. 결국 파괴를 통해 부가 창출된다는 주장은 이른바 '깨진 유리창의 오류'에 빠진 허구라는 것이다.

지방선거 참패 이후 정부와 여당이 깨진 유리창을 손보느라 부산하다. 그러나 깨진 유리창을 갈아 끼우는 것은 필요하지만, 불량제품으로 갈아 끼운다면 이중으로 손해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