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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수임' 최유정에 6년 선고 판사, 퇴임 두달만에 가습기 영장심사 변호사로

중앙일보

입력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노을공원에 위치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추모의 숲'에서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들과 피해자 및 유족들이 나무를 심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노을공원에 위치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추모의 숲'에서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들과 피해자 및 유족들이 나무를 심고 있다. [연합뉴스]

100억원대 수임료를 받아 전관예우 논란을 일으킨 변호사에게 중형을 선고했던 판사가 대형 법무법인에 들어간 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영장 심사 변호를 맡았다. 검찰이 핵심 피의자로 꼽은 인사는 이 변호사의 변호로 영장이 기각돼 풀려났다.

 5일 검찰 등에 따르면 서울 동부지법 부장판사로 근무하다 올 2월 퇴직한 현모(41‧사법연수원 24기) 변호사(법무법인 대륙아주)가 가습기살균제 사건에서 안용찬(60) 애경 전 대표의 영장실질심사 변호를 맡았다. 안 전 대표는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돼 지난달 29일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현 변호사가 영장실질심사가 열리기 하루 전인 지난달 28일 선임계를 냈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검찰은 현 변호사가 영장 재판을 맡은 송경호(49‧연수원 28기) 부장판사의 고교 2년 선배라는 점에도 주목했다.

 현 변호사는 2017년 2월까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 재판장을 지냈다. 당시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 기소된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47·연수원 27기) 변호사에게 징역 6년에 추징금 45억원을 선고했다. 최 변호사는 브로커와 공모해 유사수신업체와 화장품업체 대표에게서 각각 50억원씩 100억원대 수임료를 받아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현 변호사는 당시 선고에서 “법치주의가 뿌리부터 흔들렸다”고 표현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건과 관련해 '가습기메이트'를 유통한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가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건과 관련해 '가습기메이트'를 유통한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가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이에 대해 대륙아주 측은 검찰 수사 단계부터 변호사 6명이 담당해 왔고 현 변호사도 1심 재판까지 계속 변호를 맡을 예정이라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대륙아주에서 이 사건을 총괄하고 있는 담당자는 최순실 특검 당시 특검보로 대변인 역할을 했던 이규철(55·연수원 22기) 변호사다.

 이규철 변호사는 중앙일보 통화에서 “SK케미칼은 제조한 가습기메이트를 다른 유통업체를 통해 팔다가 해당 업체가 파산하자 판매망만 애경에 맡긴 것”이라며 “가습기메이트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SK케미칼 측에서 영업 비밀이라 알려줄 수 없다고 했고, 문제가 생기면 손해 배상과 소송비용까지 대주겠다는 계약서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습기메이트의 유해성은 SK케미칼을 통해 밝혀야 한다는 점을 영장실질심사에서 강조했다”며 “변호사가 판사와 고교 동창이라 영장이 기각됐다는 시각은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안용찬 전 대표는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맏사위로 애경화학 총무이사와 애경유화 전무이사 등을 지냈다. 2012년부터 그룹 자회사인 제주항공 대표이사도 맡았다. 지난해 12월 임기를 2년여 남기고 제주항공 대표이사직을 사임했다.

 애경산업은 안 전 대표가 애경그룹 생활‧항공부문장 부회장(2006~2017년)을 맡을 당시와 겹치는 2002~2011년 SK케미칼이 만든 가습기메이트를 판매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 권순정)는 애경산업이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일어난 2011년 이전부터 해당 제품이 인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숨기고 판매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가습기메이트를 제조한 SK케미칼에 대해서는 김철 SK케미칼 사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촌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SK케미칼의 지주회사) 부회장 등 윗선들을 불러 조사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지난 1일 박철(53) SK케미칼 부사장은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검사 출신인 박 부사장은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장을 마지막으로 2012년 SK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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