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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양 속출하는 지방 산단…포항신흥은 분양률 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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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경북 구미시 구미국가산업1단지 곳곳에 공장 임대 홍보 현수막이 걸려 있다. [김정석 기자]

경북 구미시 구미국가산업1단지 곳곳에 공장 임대 홍보 현수막이 걸려 있다. [김정석 기자]

“앞으로 (경북) 구미국가산업5단지에는 탄소섬유 소재를 바탕으로 후방산업, 연관 산업들이 대거 들어올 겁니다. 인구 증가 효과는 12만 명 정도로 보고요. 분양엔 문제가 없습니다.”

지방 산업단지는 불황 #장밋빛 청사진 그리며 “일단 짓자” #휴·폐업 늘며 곳곳엔 ‘임대’ 현수막 #지역 경제 구세주? 애물단지 전락 #전문가 “포퓰리즘 남발로 악순환”

2017년 10월 13일 한 방송에서 남유진 당시 구미시장이 해평면·산동면 일대에 조성 중인 구미국가산업5단지(이하 5단지)에 대해 내놓은 전망이다. 기업들이 분양 전부터 관심을 보여 새 단지가 지역 경제의 구세주가 될 것이란 기대였다. 구미시는 삼성·LG 등 대기업 공장이 최근 10년 새 수도권과 해외로 이전해 침체의 늪에 빠지자 5단지를 회생의 돌파구로 삼았다. 1단계 산동면(375만㎡) 구간의 공정률이 99%에 이른 지금 구미시의 장밋빛 청사진은 그대로 이뤄지고 있을까. 현실은 딴판이었다.

지난달 14일 5단지 1단계 조성 현장. 확 트인 벌판이 바둑판처럼 정리돼 있었다. 건물만 들어서면 산업단지(산단)의 위용을 갖출 터였다. 주택용지나 상가 분양은 순조롭게 끝났다. 문제는 약 25%에 머무는 산업시설 용지 분양률이다. 지금까지 입주가 확정된 기업은 일본계 도레이첨단소재와 국내 중소기업 10여 곳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엔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에 실패했다. 공사 현장 인근에서 만난 주민 이홍은(67)씨는 “SK하이닉스를 가져오지 못하면서 이곳이 유령 산업단지가 되지 않을지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경북의 포항블루밸리국가산업단지(전체 608만여㎡)도 구미와 오십보백보다. 이곳의 1단계 산업용지 분양률은 3%대에 불과하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구미·포항의 두 국가산단은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지방 경제의 한 단면이다. 중앙 정부가 정하는 국가산단(44곳)은 한국 제조업의 메카다. 지방엔 생존의 버팀목이다. 산단 없는 일자리 창출과 인구 유지는 상상도 못 한다. 그런데도 최근에 지정된 국가산단은 무더기 미분양이다. 일선 지자체가 정하는 일반산단(664곳)과 농공단지(472곳)도 마찬가지다. 포항신흥일반산단의 분양률은 0%다. 경주 천북2일반산단은 12.2%, 포항 영일만3일반산단은 20.3%밖에 안 된다.

올 1월 현재 나라 전체 산단의 미분양 면적은 26.33㎢다. 산단이 완공된 후에도 분양률이 50%를 밑도는 곳도 26개나 된다(산업입지정보센터시스템). 대부분의 산단이 선분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준공 후 절반도 채우지 못하는 곳은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역 경제 활성화의 총아인 산단이 되레 애물단지로 전락한 곳이 적잖다는 얘기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입주 업체의 가동률도 문제다. 대구 대표 산단인 성서산단의 지난해 4분기 가동률은 70.23%로 4분기 연속 하락세다. 1년 새 기업체가 113개, 근로자가 2958명 줄었다. 구미산단 역시 지난해 10월 현재 가동률 64.8%를 기록했다. 50인 미만 중소기업 가동률은 32.4%로 전국 꼴찌다. 구미산단 4단지 인근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강준호(34)씨는 “최근 일대 식당들이 모두 한산하다”고 전했다. 다른 지역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달 18일 오후 충남 천안시 백석농공단지 A공장. 굳게 닫힌 철문은 녹이 슬어 붉은빛을 띠었다. 공장 벽면에 ‘공장전문 임대’를 알리는 빛바랜 현수막들이 붙어 있었다. 충남에선 매년 문 닫는 기업과 공장 수가 가파른 상승곡선이다. 2016년 19개 공장이 휴업했지만 2017년엔 32곳, 지난해는 35곳으로 늘었다. 폐업도 2017년 9곳에서 지난해 12곳으로 증가했다.

산단은 1960년대 초 이래 국가 경제 성장과 산업화의 견인차였다.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한몫했다. 하지만 산단의 방정식이 바뀌었다. 기업 수요에 비해 많은 공급이 이뤄졌다. 실제 전체 산단은 급증 추세다. 2001년 499곳에서 2005년 587곳, 2010년 902곳, 2015년 1127곳으로 늘어났다. 올 1월 현재는 1207곳이다. 14년새 2배 규모가 됐다. 가뜩이나 경기는 나쁘고 수도권 규제완화도 봇물이다. 그런데도 지자체들은 ‘일단 짓고 보자’는 식이다. 산단 상당수가 산업용지 분양에도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이와 맞물려 있다.

전문가들의 주문은 적잖다. 산단 추가 조성에 앞서 입지 타당성부터 면밀히 따져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다. 이철규 의원(자유한국당, 동해·삼척)은 “입지 수요에 대한 면밀한 조사 없이 지역 안배와 포퓰리즘 차원에서 산단이 지정돼 공급 과잉과 미분양에 따른 악순환으로 재정 낭비가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미·포항·천안=김정석·신진호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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