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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ㆍ소액주주 목소리 커진 '2019년 주총'…재벌 총수도 '긴장'

중앙일보

입력

12월 결산 상장사들의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마무리됐다. 다양한 장면을 남긴 올해 주총 시즌에서 두 주인공을 꼽자면 단연 국민연금과 소액주주다.

국민연금, 대기업도 '들었다' '놨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중앙포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중앙포토]

지난 27일은 설마가 현실이 된 날이다. 이날 열린 대한항공 주총에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 대한 사내이사 연임안이 부결됐다. 해당 안건은 2.6%포인트의 차이로 문턱을 넘지 못했다.

표 대결은 일찌감치 예고됐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과 ISS 등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은 조 회장 연임안에 대한 반대 투표를 권고했다. 참여연대와 민변은 소액주주들을 상대로 반대표 위임장 확보에 나섰다.

국민연금은 지난 26일 저녁 조 회장 연임안에 대한 반대 투표 방침을 확정했다. 주총을 13시간 정도 앞둔 시점이었다. 국민연금이 행사한 11.56%의 반대표는 조 회장에겐 결정타였다.

미국계 펀드 엘리엇과 표 대결을 펼쳐야 했던 현대자동차에겐 국민연금이 든든한 방패가 됐다. 지난 22일 현대차 주총에서 엘리엇이 제안한 배당안과 사외이사 선임안은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됐다.

엘리엇이 현대자동차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한 인물들. 왼쪽부터 존류 후보, 로버트 맥긴 후보, 마거릿 빌슨 후보. [사진 엘리엇매니지먼트]

엘리엇이 현대자동차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한 인물들. 왼쪽부터 존류 후보, 로버트 맥긴 후보, 마거릿 빌슨 후보. [사진 엘리엇매니지먼트]

지난 14일 국민연금은 엘리엇이 제안한 사외이사 선임안에 전부 반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민연금의 현대차 지분율은 약 8.7%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스튜어드십 코드(의결권 행사 지침)를 도입했다.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두고 일부에선 '연금 사회주의'라는 비판도 나온다.

소액주주 '모시고' 소액주주에 '놀라고'

코스닥 상장사 칩스앤미디어는 지난해 주총에서 '3%룰'과 '섀도보팅(그림자투표) 폐지'에 막혀 감사 선임안(찬성표 3.13%)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올해는 감사 선임에 필요한 의결권을 확보하기 위해 전자투표제를 도입하고 의결권 위임 대행업체를 선임했다.

주요 주주들에겐 직접 전화를 걸어 전자투표에 참여해달라고 부탁했다. 대행업체는 소액주주들을 찾아가 위임장을 받아왔다. 결국 회사는 지난 15일 열린 주총에서 감사 선임안을 무사히 통과시켰다.

의결권 위임 대행업체 '어울림' 관계자는 "의결권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상장사의 요청이 많아지면서 신생업체가 15개나 될 정도로 시장이 커졌다"고 말했다.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중앙포토]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중앙포토]

소액주주들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움직임도 눈에 띄었다. 한솔그룹의 지주회사 한솔홀딩스는 일부 소액주주들에게서 "우리가 추천한 사내이사를 선임하라"는 주주제안을 받았다. 지난 26일 한솔홀딩스 주총에선 이들의 제안이 부결됐지만 회사 측을 긴장하게 하기엔 충분했다.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삼성전자 제50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총회장 입장을 위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김경록 기자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삼성전자 제50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총회장 입장을 위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김경록 기자

액면분할 이후 처음 열린 삼성전자 주총에도 1000여 명의 주주가 몰렸다. 주총 시작 예정 시간인 오전 9시에도 수백명이 주총장 바깥에 줄을 지어 설 정도였다. 앉을 자리가 없어 선 채로 주총에 참여한 주주들만 200명가량이었다. 끝내 주총에 참석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 주주들도 있었다.

삼성전자는 주총이 끝난 뒤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했다. 사과문에선 "늘어난 주주 수를 감안해 좌석을 두 배로 늘렸으나 주주들의 관심에 비하면 많이 부족했다"며 "내년 주주총회에서는 장소와 운영방식 등 모든 면에서 보다 철저히 준비해 불편을 끼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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