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이래야 살아남는다 ④ 경상대학교 응용생명과학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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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대 BK21 농생명사업단장 박정동 교수(앞줄 오른쪽에서 둘째)가 학생들과 실험을 하고 있다. [경상대 제공]

지난달 29일 경남 진주시에 있는 국립 경상대의 응용생명과학부 작물 분자 유전학 연구실. 학부 4학년 김경목(25)씨가 '애기장대'라는 배추과 식물 잎을 분쇄하고 있었다. 김씨는 "잎 형성에 어떤 유전자들이 관여하는지 알려고 한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이 대학 12년 선배 김민철 (88학번) 교수는 "좋은 논문거리가 될 것"이라고 격려해 줬다. 김 교수는 국내 최초로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세계적 권위의 과학잡지 '네이처'에 실었다.

김 교수뿐만 아니라 이 대학의 학부.대학원만 마치고 세계 3대 학술지(네이처.셀.사이언스)에 논문을 낸 학생이 2000년 이후 다섯 명이나 된다. 또한 이 대학 출신 33명이 미국 MIT.버클리대.스탠퍼드대나 독일 막스 프랑크 연구소 등 유명 연구소에 박사후 연구원(Post-doctor)으로 진출했다.

경상대는 지방대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식물생명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했다고 자부한다. 조무제 총장은 "우리는 간판이 아니라 실력을 인정받는 대학"이라며 "식물생명 분야에서는 국내 최고, 세계 톱 10위 안에 들었다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 식물생명의 메카=허원도(87학번.현재 스탠퍼드대 조교수 임용 예정)씨의 논문은 2003년 5월 '셀'의 표지를 장식했다. 뒤이어 장호희(95학번.경상대 박사후 연구원)씨도 2004년 6월 '셀'에 논문을 냈다.

미국 스크립스(Scripps) 연구소 박사후 과정에 있는 이 대학 정우식(88학번) 교수는 "(경상대 입학생은) 입학 성적이 서울대 학생보다 많이 뒤처지고, 졸업해서도 국내에서는 지방대 출신이라는 핸디캡이 있다"며 "하지만 우리는 좋은 논문을 쓰고, 외국에 나가 실력을 인정받는다"고 말했다.

경상대는 지난해 9월부터 농업생명 분야에서 미국 내 10위 안에 드는 퍼듀대와 복수박사학위제를 시행하고 있다. 국내 대학 중에서 미국 대학과 복수박사학위제를 하는 대학은 경상대가 유일하다. 이 제도는 2년간 경상대에서 과정을 밟고, 국제학술지(인용지수 5.0 이상의 유명 학술지)에 논문을 내야 한다. 이후 퍼듀대에서 1년 동안 공부하면 경상대와 퍼듀대에서 각각 박사학위를 주는 것이다.

◆ 비결은 투자와 경쟁=경상대가 식물생명 분야에 눈을 뜬 것은 1983년이다. 출발은 이 대학 출신인 조 총장이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후 과정에 있다가 교수로 오면서다. 조 총장은 귀국하면서 사비를 들여 3만 달러어치의 시약과 실험기구를 구입했다. 조 총장은 귀국 후 이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유전공학연구소를 만들었다. 경상대는 90년부터 과학기술부의 생명공학 분야 국가핵심기술연구센터로 지정돼 매년 10억~30억원씩 지원받았다. 두뇌한국21(BK21) 사업에서도 수도권 대학들과 경쟁해 두 차례 모두 농생명 분야 사업단이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다.

응용생명과학부 박사과정 4학기 김호수(30)씨는 "좋은 논문을 두 편 이상 쓰지 못하면 박사학위를 받을 수 없을 정도로 학위의 질 관리가 엄격하다"고 말했다. BK21 사업에 참여하는 농생명사업단은 철저한 경쟁 원리가 적용된다.

예를 들어 인용지수가 높은 학술지에 논문을 낸 대학원생은 등록금의 75%를 장학금으로 받고, 인용지수가 낮은 학술지에 논문을 내면 등록금의 50~25%를 받는다.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조교수에서 부교수가 될 때 인용지수가 높은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해야 한다. 부교수가 교수로 승진할 때는 인용지수가 더 높은 학술지에 논문을 내야 한다. "논문을 내든지 도태되든지 하라(Publish or perish)"는 미국 대학교수 사회의 원칙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 사업에 뛰어드는 교수들=경남 진주시 삼곡리에 있는 바이오21센터. 2002년 산업자원부와 진주시.경상대가 공동으로 200여억원을 들여 만든 벤처지원센터다. 경상대 교수들이 창업한 기업이 입주해 있다. 경상대 생명과학부 신용철 교수가 창립한 '아미코젠'은 식물에서 당뇨 억제 단백질을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진주=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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