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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신·유급 '미운 오리새끼' 발레리나 '백조'로 훨훨 날아오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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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고등학교에 가서야 토슈즈를 신을 수 있었어요. 무대에 서보지 못하고 그저 맨발로 연습만 했어요. 초등학교 시절엔 유급까지 당했다니깐요. 정말 발레 못 했어요."

박세은(17.서울예고 2년)양이 USA 발레콩쿠르(일명 잭슨콩쿠르) 주니어(15~18세) 부문 은상을 차지했다. USA 발레콩쿠르는 바르나.모스크바.로잔과 함께 세계 4대 발레 대회 가운데 하나다. 1982년 공산권 유명 콩쿠르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이 만들었다. 4년마다 열려 '발레 올림픽'으로도 불린다. 박양은 금상 없는 은상을 수상해 사실상 1등에 올랐다.

박양은 내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영재로 입학한다. '천재 발레리나'란 소리를 들을 만큼 지금은 실력을 인정 받지만 시작할 땐 눈에 띄는 소녀가 아니었다.

발레 입문은 초등학교 3학년 때. 국립발레단 문화학교에 다닌 게 계기였다. 그러나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5학년 때는 4학년들과 수업을 받아야 했다. '소질이 없나 보다'라며 포기하려던 순간, 당시 최태지 국립발레단장이 "발레는 아주 오래해야 한다. 초조해 하지 말고 기초를 다져라"라는 조언에 다시 용기를 가졌다고 한다.

예원에 진학하고도 그녀의 자리는 맨 뒤였다. 키는 140㎝에 못 미치는 등 신체 조건도 안 좋았고, 기량도 최하위 클래스였다.(지금 그녀의 신장은 167㎝) 작품 참여는 꿈도 못 꾼 채 그저 바(bar)를 잡고 죽어라 똑같은 동작만 반복해야 했다. 대신 발레에 대한 집착만큼은 누구보다도 강했다. 노트에 작품 순서를 빽빽이 적어가며 달달 외웠고, 연습실엔 매일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

"기본에 충실한 덕을 보는 것 같아요. 토슈즈는 빨리 신는 것보다 오래 신는 게 더 중요하지 않겠어요." 그녀의 아버지 박효근씨는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로 거듭났다"며 감격해했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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