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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청와대의 ‘무조건 반박’ 강박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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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대통령의 대구 칠성시장 방문 때 청와대 경호원이 기관단총을 노출한 게 논란이 되고 있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이 “무장테러 상황이 아니면 기관단총은 가방에서 꺼내지 않는 것이 경호 수칙”이라고 지적하면서다. 과잉 의전이 빚은 논란은 여러 번 있었다. 우리나라만의 일도 아니다. 경호원들의 직업의식과 시민들이 느끼는 위화감은 늘 충돌한다. 하지만 대통령을 보려고 몰려든 시민들이 경호원들로 인해 불안을 느꼈다면 1차적으론 경호원의 주위 태만이거나 실수라고 봐야 할 것이다. ‘친근한 경호, 열린 경호, 낮은 경호’(주영훈 경호실장)를 표방한 정부답게 사과하는 게 옳았다. 그런데 청와대 대응은 180도 달랐다. 김의겸 대변인은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기관단총을 들고 경호했다’며 당시 사진을 공개했다. 과거 정부에서도 그랬으니 문제될 게 없다는 반응은 역풍을 불렀다. 인터넷에 ‘확실히 열린 경호는 맞는 것 같다’는 조소가 이어지는 이유다.

실수 인정 않는 건 무오류·무결점이란 오만 #민심 멀어지면 지는 것 … 청와대, 여유 갖기를

잘못이라며 사과하면 됐을 일을 과거 정부 탓, 야당 탓, 언론 탓으로 떠넘겨 논란을 증폭시키는 건 이제 청와대의 일상이 됐다. 문 대통령이 말레이시아 방문 때 인도네시아어로 인사말을 건네 ‘외교 결례’ 논란이 일었던 사례도 그렇다. 실수라고 하면 될 일을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한 인사말은) 말레이시아에서도 쓰고 있다”는 해명을 내놨다. 탁현민 행사기획 자문위원은 “상대 국가가 어떤 말도 없는데 외교 결례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상대국에 대한 결례”라며 되레 언론들을 면박하는 글을 올렸다. 대통령의 캄보디아 순방을 알리는 청와대 SNS에 버젓이 대만의 국가양청원 사진을 올려놓고, 체코 순방 땐 국가명을 ‘체코슬로바키아’라고 표기하는 황당한 외교 실수가 이어졌지만 누구의 사과도 없었다.

포항 지진만 해도 그렇다. 지열발전소가 원인이라는 조사단 발표가 나오자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당시 부실·졸속 추진된 지열발전 사업이 인재로 작용한 것”이라며 전 정권 탓으로 돌렸다. 집권당이라면 118명의 이재민과 막대한 재산피해를 가져온 재난으로부터 어떻게 국민을 안심시키고 피해를 구제할 것인지를 먼저 내놨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집권당답지 못한 미성숙한 언행이 국민의 불신과 반발을 사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넘친다. 전직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의 폭로가 나왔을 때 청와대는 유감 표명은커녕 “현 정부의 유전자엔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체크리스트”라는 말만 늘어놓았다.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이어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으로 수사가 확대된 지금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바로 자신들은 무결점, 무오류라는 선민의식과 자만에 빠져 있는 때문이다. 그러니 잘못을 쿨하게 인정하고 바로잡으면 될 일을 무조건 반박하고 남의 탓으로 떠넘긴다. 정치컨설턴트인 박성민씨는 이를 “반박 강박증”이라고 했는데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에서 지면서 앞으로 갔지 않는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여도 민심으로부터 멀어지면 지는 거다. 져주는 게 이기는 거라는 여유를 청와대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청와대가 경청해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