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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상연의 시시각각

경제야 돌아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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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처녀가 시집 안 간다는 말과 노인이 빨리 죽고 싶다는 얘기,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건 분명 거짓말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꼭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다. ‘결혼이 필수’란 서울의 미혼 여성이 3%에 불과하다는 정부 연구소 발표가 나왔다. ‘아이가 꼭 있어야 한다’는 응답은 6%였다. 아이가 행복할 것 같지 않다는게 으뜸 원인이다. 가난을 대물림하느니 차라리 안 낳겠다는 뜻이다.

요즘 우리 사회 분위기다. 시집·장가 가려면 직장이 있어야 하는데 취업은 전쟁터다. 2월 취업을 뜯어보면 대부분 60세 이상 일자리다. 65세를 넘기면 증가 폭이 훨씬 크다. 반면에 청년층은 넷 중 하나꼴로 일이 없어 사상 최악이다. 한마디로 세금 퍼부어 숫자만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대선 캠프 출신들 일자리와 취로사업만 호황인 일자리 정부다.

그런데도 현 집권층은 ‘취업자가 크게 늘었다’며 ‘올해 경제 흐름이 견실하다’고 자랑한다. 인구 요인 등과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고용 부진이야 그렇다 치자. ‘장사가 안 돼 폐업하고 싶다’는 자영업자의 비명을 대통령은 ‘엄살’쯤으로 보고받는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경제 실패 프레임 탓에 성과가 국민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발언이 나올 까닭이 없다. 아니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 3년이 시작되자마자 조셉 나이 등 12명의 하버드대 교수들이 쓴 『국민은 왜 정부를 믿지 않는가』란 책을 꺼내놓고 청와대 수석회의에서 토론을 시켰다. 통계적 기법으로 따져본 결과 ‘정부 불신은 객관적 성과보다 국민들이 이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연구결과에 고무된 노무현 청와대는 싸늘한 민심을 ‘늘 발목이나 잡는 언론 탓’으로 돌리고 편을 갈랐다.

곧 3년 차를 맞는 문재인 정부가 열심히 그 길을 좇는 모양새다. ‘경제위기론은 가짜 뉴스’란 가짜 뉴스로 치고 나왔다. 그런다고 젊은이가 취직 못하는 현실, 자영업자가 생업을 포기하는 어려움이 바뀌진 않는다. 1년 내 추락 중인 역대 최장 기간의 경기지수 하락에 급브레이크가 걸릴 것 같지도 않다. 이게 정부를 믿지 않고 결혼을 기피하는 진짜 이유다. 도대체 왜 ‘우리 문제’를 신경 쓰지 않느냐는 데 대한 좌절감이다.

물론 어떻게 인식하느냐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깃장이 신뢰를 만드는 건 아니다. ‘첫째도 경제, 둘째도 경제’를 앞세워 ‘잃어버린 20년’에서 탈출하고 있는 아베의 정치를 보면 알 수 있다. 1차 집권 때의 아베 내각은 지금과 정반대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때만 해도 아베는 친한파 정치인에 우익색이 없었다. 심지어 미국엔 ‘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쪽이었다.

한마디로 ‘가치관 외교의 도련님’에 경제는 뒷전이었다. 그러곤 1년 만에 정권을 반납했다. ‘강한 일본’을 내세운 지금의 아베는 딴판이다. 장기 집권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1차 집권 때의 좌절과 경험이 밑거름’이라고 서슴없이 답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경제가 살아나야 지지 기반도 살아난다. 설사 성과와 지지가 별개라 쳐도 성과 없이 지지만 요구한다면 길을 잘못 든 거다.

그토록 미워하는 아베에게도 배울 점이 많다. 경제에서 정치를 빼라는 게 지금 아베가 과거 아베로부터 배운 교훈이다. 그래야 집 나간 경제가 돌아온다. 탈원전이 그렇고, 미세먼지가 그렇고, 소득주도 성장이 그렇다. 그게 아니면 ‘우린 진영 논리에 충실하다’고 고백하는 게 정직한 거다. 최소한 정치 불신과 정치 혐오는 막을 수 있다. ‘우린 다르다’고 말하려면 뭔가 달라야 하지 않겠나.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