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들은 (예일, 스탠퍼드대 등) 특정 학교를 원했고, 나는 옆문을 만들어 줬다.”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입시 비리의 브로커 윌리엄 싱어가 한 말이다. 싱어는 무려 761명으로부터 수천만원씩 받고 그들을 ‘운동부 엘리트’로 둔갑시켰다. 대학 관계자를 매수했다. 싱어는 이렇게 부연했다. “정문은 학생 혼자만의 힘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힘들죠. 뒷문은 대학에다가 거절못할 정도로 돈을 쏟아부으면 열립니다. 저는 옆문을 개척했습니다. 뒷문보다 10분의 1, 아니 100분의 1만 들이면 됩니다. 어때요, 괜찮죠?”
사실 ‘옆문’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지난 1월 말 워싱턴을 방문했던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해프닝이었다. 김영철 일행은 취재진이 대기하던 호텔 정문과 뒷문을 피해 옆문으로 몰래 들어갔다. 말이 옆문이지 쓰레기 하역장 쪽문이다. 쥐가 다니는 길이다. 다음 날 아침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마찬가지. ‘상호주의’를 의식한 듯했다. 둘 다 도무지 정면 돌파할 자신이 없어 보였다. 그리곤 엉성하게 2차 정상회담으로 향했다. 비핵화가 뭐고, 뭘 비핵화하겠다는 건지 사전 조율도 없었다. ‘정상 간 친분’이란 옆문에 의존했다. 회담은 결렬됐다. 옆문의 한계였다.
청와대 고위인사가 17일 ‘조기 수확을 통한 신뢰 구축’, ‘스몰 딜→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충분히 괜찮은 거래)’이란 신개념을 선보였다. 이도 저도 안 되니 참으로 이상한 용어를 만들어낸다. 청와대는 “미국과 북한의 입장을 절충한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북한이 추구해 온 ‘스몰 딜’ ‘단계적 비핵화’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대놓고 미국이 추구하는 ‘빅딜’에 반대할 수 없으니 표현만 각색했다. 우리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생각할 때 이해 못할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어정쩡한 옆문식 접근만 하려 하니 북한은 우리를 미국 편이라 하고, 미국은 우리를 북한 편이라 한다. 예상대로 폼페이오 장관은 청와대의 발언을 하루 만에 일축했다.
하노이 회담은 양측의 비핵화 인식 차를 입증했다. 북한은 영변의 알려진 핵시설로 땡처리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반면에 미국은 아예 문서로 “비핵화란 핵·미사일·대량살상무기(WMD)의 완전 폐기”라 못 박았다. 이 격차를 모호하게 봉합하는 ‘옆문’이란 현실적으로 하노이에서 사라졌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국제사회가 지금 우리에 바라는 것 또한 ‘중재자’ ‘촉진자’, 이런 게 아니다. 북한이 얼마나 비핵화에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 확인해 달라는 거다. 거의 ‘요구’에 가깝다. 그런데 청와대 대변인은 트럼프가 북한의 비핵화를 설득해 달라고 한 걸 ‘중재 요청’으로 부풀렸다. 그렇게 해서 중재자가 되면 상황이 달라지는가. 여기에 비현실적인 ‘굿 이너프 딜’을 조급하게 내놓았다. 신뢰만 떨어질 뿐이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딱 하나. 김정은에 “당신이 생각하는 비핵화는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와 같냐, 틀리냐”를 묻고 확인하는 것이다.
입시 브로커 싱어의 말마따나 ‘정문’으로 가는 건 힘들다. 고달프다. 비핵화도 입시와 마찬가지다. 옆문이란 없다. 있다 해도 두고두고 화근이 될 뿐이다. 앙코르와트에서 돌아온 문재인 대통령은 귀국 일성으로 ‘장자연·김학의·버닝썬’ 3종 세트를 ‘검경의 명운’을 걸고 챙겨야 할 일로 규정했다. 그게 그렇게 시급하고, 간절하고,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사안일까. 그렇다 치자. “‘국가의 명운’을 걸고 북한을 비핵화 협상의 정문으로 끌고 오겠다”는 말은 왜 들리지 않는 걸까. 우린 언제까지 옆문만 기웃거릴 건가.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