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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지진은 사람 탓…"4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무지로 놓쳐버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대한지질학회 주최로 열린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에 관한 정부조사연구단 결과발표 기자회견'에서 공동조사단장인 세민 게(Shemin Ge) 미국 콜로라도대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대한지질학회 주최로 열린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에 관한 정부조사연구단 결과발표 기자회견'에서 공동조사단장인 세민 게(Shemin Ge) 미국 콜로라도대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1년만에 열린 판도라의 상자 

 2년 전 포항지진의 원인을 규명할 판도라 상자가 열렸다.

포항 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은 20일 오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포항지진과 지열발전 연관성 조사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단이 한 시간이 넘는 연구결과에 대한 설명 뒤 “포항지진은 지열발전에 의한 인공지진”이라고 결론 내리자, 장내에서는 박수 소리와 함께 “피해 보상하고 책임자 처벌하라” “국정조사 열어서 그간의 문제점을 낱낱이 조사하자”와 같은 목소리들이 터져나왔다. 이날 새벽 전세버스편으로 상경한 300여 명의 포항시민들이었다. 이번 조사결과 발표가 앞으로 가져올 파장을 짐작게 할 수 있는 말들이다.

지난해 3월 시작해 1년을 끌었던 포항 지진 원인 조사는 그간의 소문과 짐작대로 ‘인공 지진’으로 결론났다. 정부조사연구단은 이날 발표에서 외국 학자들로 구성된 해외조사위원회를 전면에 내세웠다. 조사 결과의 공정성 시비와 여파를 우려한 정부조사연구단의 고육지책이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외국 교수 내세운 정부조사연구단 발표 

해외조사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쉐민 게 미국 콜로라도대학 교수이 맨처음 나섰다. 그는“그간 지열 발전에 의한 다섯 번의 중요한 지층 자극이 있었다”며 “포항지진은 지층에 고압의 물을 주입하면서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단층대를 활성화해 촉발된 것”이라고 밝혔다.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을 이끈 이강근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최종 결론 발표에서 “고압의 물이 가해진 위치와 시간이 지진 발생의 시공간적 분포와 일치했다”며 “물 주입이 단층면에 미소(약한) 지진을 일으켰고, 그 영향이 게속 누적되면서 거의 임계 응력 상태에 있었던 단층에서 지진이 발생한 것”이라고 조사 결과를 매듭지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진상과 책임 규명 위한 조사 불가피

이에 따라 앞으로 정부를 대상으로 한 수천억원대의 소송전과 함께, 어떤 과정을 거쳐 지열발전 실험이 진행됐는지, 그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한 진상과 책임 규명을 위한 조사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애초 포항지진으로 인한 시설물 피해 총 2만7317건이며, 피해액은 551억원으로 집계했지만, 이날 조사단이 공개한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총 피해액은 3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밝혀졌다. 시민단체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는  지진 피해 손해 배상액이 5조원에서 9조원까지 이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지진 피해'는 주택파손 등 물적 피해(감정가)를 제외하고 1인당 1일 위자료 5000원~1만원, '산업공해 피해'는 2000원~4000원을 청구했다. 소송 참여가 포항시민 전체로 확대되면 손해 배상액은 5조원에서 9조원까지 이를 것이라는 게 이들의 추정이다

그간 포항지진은 인근 지열발전소에 의한 ‘유발지진’이라는 의견과, 자연 발생적인 것이라는 의견이 첨예한 대립을 이뤄왔다. 유발 지진론은 산업통상자원부가 민간기업에 의뢰해 진행한 ‘MW(메가와트)급 지열 발전 상용화 기술개발’국가 연구개발(R&D) 프로젝트가 지진을 일으켰다는 주장이다. 땅 속 깊은 곳의 열을 끌어내기 위해 초고압의 물을 무리하게 집어넣다가 불안한 지층을 건드려 지진을 유발했다는 논리다. 포항 지열발전은 섭씨 최고 170도에 이르는 포항 흥해읍 지하 4㎞ 아래의 열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자는 것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무지와 자료 해석 부실, 안전관리 부재가 낳은 인재"  

이진한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이날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포항지진을 피할 수 있는 4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무지와 자료 해석 부실, 안전관리 부재 등으로 기회를 놓쳐버렸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① 2015년 10월 시추 작업 중 이수(泥水:수분을 머금은 진흙)가 대거 유실돼 지진이 발생했을 때 시추작업을 멈추고 정밀조사를 했어야 했고 ② 2016년 1월 물 주입 양보다 큰 규모(2.1)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정밀조사를 요구한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들여 2차 물 주입을 중단해야 했으며 ③2017년 4월15일 규모 3.1의 지진 발생 때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물 주입 중단과 정밀조사를 실시해야 했다고 분석했다. ④또 미소지진 분석이 부실해 단층대에 물을 넣는 것의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한 것도 참사를 일으킨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이런 부분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지난해 4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한‘2017년 포항지진의 유발지진 여부 조사’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포항 지진이 지열 발전소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힌 바 있다.

2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대한지질학회 주최로 열린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에 관한 정부조사연구단 결과발표 기자회견'에서 포항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조사단은 이날 인근 지열발전소의 포항지진 촉발 결론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2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대한지질학회 주최로 열린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에 관한 정부조사연구단 결과발표 기자회견'에서 포항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조사단은 이날 인근 지열발전소의 포항지진 촉발 결론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해외서도 지열발전 인한 지진 적지 않아

지열발전의 지진 유발은 해외에도 사례가 적지 않다. 2006년 12월 스위스 바젤에서는 지열발전소 측이 시추를 시작한 지 불과 엿새 만에 규모 3.4의 지진이 발생했다. 취리히 연방공과대가 2007년 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시추공 주변에 설치된 6개의 지진계가 관측한 지진은 무려 1만 3500회에 달했다. 2009년 8월 독일 린다우인데어팔츠에서는 지열발전소의 발전용 관정으로부터 불과 450m 떨어진 진앙에서 규모 2.7의 지진이 발생했다. 당시 진원의 깊이 역시 3.3㎞로 발전용 관정의 바닥 부분과 일치했다.

한편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별도의 기자회견을 열고 지열발전 상용화 기술개발 사업을 영구 중단키로 했다. 또 올해부터 5년간 2257억원을 투입하는‘포항 특별재생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정승일 산업부 차관은 “정부는 조사연구단의 연구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피해를 본 포항시민들께 깊은 유감을 표한다”면서 “조사연구단의 연구결과에 따라 정부는 앞으로 취해야 할 조치를 최선을 다해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최준호ㆍ서유진ㆍ허정원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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