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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퇴양난 전주 한옥마을 “1000만 관광객이 안티 될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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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 13일 전주 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경기전에 들어가고 있다. [김준희 기자]

지난 13일 전주 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경기전에 들어가고 있다. [김준희 기자]

“완전히 도떼기시장이다. (호객하는) 마이크 소리는 시끄럽고, 꼬치 굽는 냄새와 연기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거리엔 호객꾼, 먹거리는 꼬치구이 #관광객 “볼거리 없다” “도떼기시장” #경기전 방문객은 1년 새 27% 줄어 #“적정 상품가 책정 등 자정 필요”

지난 13일 오후 전북 전주시 풍남동 한옥마을 태조로. 중년 여성 100여 명이 삼삼오오 가게들을 지나치며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이들은 “한옥마을이라고 해서 왔는데, 한복 말고는 볼거리가 없다”고 말했다. ‘하룻밤 묵고 가냐’는 물음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각종 조사에서 ‘가장 여행하고 싶은 곳’에 손꼽히던 전주 한옥마을이 기로에 섰다. 수치상으로는 ‘한 해 1000만 관광객’을 지키고 있지만, 실속이 없다는 지적이다. 전주시에 따르면 지난해 1054만명이 전주 한옥마을을 찾았다. 2016년부터 3년째 1000만명을 넘었다. 하지만 더는 숫자가 늘지 않아 “침체의 늪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인들은 “가겟세는 치솟는데, 매출은 급감하고 있다”고 했다.

경기전(慶基殿) 방문객 감소가 이런 현상을 보여준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임금의 초상화)을 모신 경기전은 한옥마을에서 돈을 쓰는 관광객 규모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로 통한다. 한옥마을 내 15개 문화시설 중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아서다. 지난해 경기전 방문객은 89만1387명으로 2017년(122만1682명)보다 27% 줄었다. 2014년부터 4년간 유지해 온 ‘방문객 100만명’이 무너졌다.

‘노른자 땅’인 태조로에 임대 현수막이 붙은 모습. [김준희 기자]

‘노른자 땅’인 태조로에 임대 현수막이 붙은 모습. [김준희 기자]

사정이 이런데도 한옥마을 땅값은 수년째 고공 행진이다. 한옥마을에서 가장 비싼 땅의 공시지가는 평(3.3㎡)당 2000만원대다. 실제 거래가는 3000만원을 호가해 서울과 맞먹는다는 말이 나온다.

상점 임대료도 비싸다.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는 박모(62)씨는 “비싼 데는 보증금 1억원에 월세 800만~1000만원 수준이고, 권리금도 5000만원은 줘야 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고비용을 감당 못한 자영업자들이 떠나 빈 점포가 늘고 있다. 전주시는 현재 한옥마을 내 560여 개 점포 중 빈 가게를 40여 군데로 파악했다. 부동산업계는 실제 공실률을 10%로 봤다. 숙박업계도 울상이다. 김홍석 전주한옥숙박체험업협회 사무국장은 “1박2일 이상 머무는 체류형 관광객이 2017~2018년보다 30% 이상 줄었다”고 했다.

한옥마을에 꼬치구이 등 길거리 음식이 점령하면서 “고유성은 사라진 채 상업주의만 남았다”는 비판이 높다. 관광객이 넘치게 오는 ‘오버투어리즘(over tourism)’에 따른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방치하면 한옥마을을 찾는 1000만 관광객이 전주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를 퍼뜨리는 ‘안티’가 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여전히 한옥마을이 관광지로서 잠재력이 풍부하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향교와 최명희문학관 등 숨은 명소가 많아서다. 전주 한옥마을은 도심 한복판(29만8260㎡)에 한옥 735채가 자리한 국내 최대 규모의 한옥 주거지다.

전문가들은 “상인들 스스로 임대료를 올리지 않거나 상품 가격을 적정하게 정하는 등 자정 노력을 하지 않으면 많은 가게가 도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영기 전주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전주시가 관광객 수를 파악하는 빅데이터 분석에 매달리기보다 관광객 개별 구매 행동들을 모니터링하는 스몰데이터 분석을 통한 질적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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