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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현실로 나온 '청부살인'..."살인보다 나쁜 범죄"

중앙일보

입력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씨의 부모 살해 용의자 김모(34)씨가 18일 오전 안양 동안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으러 이동하고 있다.경찰은 나머지 용의자 3명을 쫓고 있다. 인천일보 이성철 기자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씨의 부모 살해 용의자 김모(34)씨가 18일 오전 안양 동안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으러 이동하고 있다.경찰은 나머지 용의자 3명을 쫓고 있다. 인천일보 이성철 기자

“여기 배고프고 성실한데 겁 없는 애들 많아”

2015년 개봉해 1300만 명이 넘는 관객 수를 기록한 영화 '베테랑'의 한 장면이다. 영화에는 재벌 3세의 비리를 파헤치는 경찰 서도철(황정민 역)이 나온다. 재벌 3세 측에서 서도철을 처리하기 위해 고민하던 중 하청업체 관계자 전 소장(정만식 역)은 먼저 청부 살인을 제안한다.

흥행 영화에서 청부 살인은 단골 소재다. 2012년 개봉해 460만 명의 관객이 본 영화 '신세계'에서도 조직 보스 정청(황정민 역)이 자신을 감시하는 경찰 강 과장(최민식 역) 등을 살해하기 위해 중국의 '연변 거지' 4명을 고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들은 돈을 받고 한국으로 들어온 뒤 살인을 저지른다. 영화 '황해'도 청부 살인에 동원된 중국동포 얘기를 다뤘다.

타인에게 살인을 청부하거나 중국동포 등을 고용해 살인에 동원하는 일은 영화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불법 주식거래와 투자유치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른바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씨(33)의 부모가 경기도 평택과 안양에서 살해된 채 발견됐다. 18일 경기동안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후 이씨의 아버지(62)는 평택의 한 창고에서, 이씨의 어머니(58)는 안양 자택에서 각각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은 범행 장소인 경기도 안양시의 한 아파트의 모습. [뉴스1]

불법 주식거래와 투자유치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른바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씨(33)의 부모가 경기도 평택과 안양에서 살해된 채 발견됐다. 18일 경기동안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후 이씨의 아버지(62)는 평택의 한 창고에서, 이씨의 어머니(58)는 안양 자택에서 각각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은 범행 장소인 경기도 안양시의 한 아파트의 모습. [뉴스1]

경기 안양동안경찰서는 19일 불법 주식거래, 투자유치 혐의로 구속기소 된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33)씨의 부모를 살해한 혐의로 피의자 김모(34)씨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씨의 부모는 지난달 25일 살해된 채 발견됐다. 경찰은 검거된 용의자 김모(34)씨 외에 중국동포 3명을 살인 공범으로 지목했다.

김씨는 지난달 구직사이트에 ‘경호 인력 모집’ 공고를 내고 중국 동포 3명을 고용했다고 한다. 중국 동포들은 국내에 거주하며 중국 오가던 인물로 국내에서 가정도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들이 범행 전, 후 가족 모두를 데리고 중국으로 출국한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 2014년 3월에는 사업 문제로 다투던 동료 기업가를 청부 살해한 ‘방화동 청부 살인 사건’도 있었다. 건설업자 이모(58)씨는 아파트 신축공사 관련 계약이 틀어지자 중국동포 김모씨를 사주해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서 동료를 살해하도록 했다.

청부살해 혐의로 기소된 전 서울시의원 김모씨가 2014년 10월 서울남부지검에 도착하고 있다. [뉴스1]

청부살해 혐의로 기소된 전 서울시의원 김모씨가 2014년 10월 서울남부지검에 도착하고 있다. [뉴스1]

같은 해에 서울시 의원 김모씨가 자신의 뇌물 수수를 감추기 위해 건설업자를 청부 살인한 사건도 발생했다. 김 전 의원은 평소 알고 지냈다는 중국동포 팽모씨에게 살인을 부탁했다.

전문가들은 살인교사가 살인에 준하는 강력범죄라고 경고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영화나 미디어에서 청부 살인을 자주 접하면 강력 범죄에 대한 ‘둔감화’가 일어나기도 한다”면서 “죄책감이 비교적 덜한 타인을 이용해 살인하는 살인교사는 살인자와 피해자 2명을 만드는 범죄라는 측면에선 살인보다 더 나쁜 범죄”라고 강조했다.

형법 제31조 1항에 따르면 타인을 교사하여 죄를 범하게 한 자는 죄를 실행한 자와 동일한 형으로 처벌한다.

법무법인 세안의 김훈 변호사는 “살인죄를 처벌할 때 양형의 기준 중 하나가 ‘우발성’ 여부”라며 “살인 교사는 철저한 계획 살인이기 때문에 죄질이 더 나쁘고 형량도 강하게 집행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심부름센터 등에 의뢰만 하면 자신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살인을 행할 수 있다는 식의 접근은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이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이른바 ‘방화동 청부살인 사건’에서 살인을 청부한 이씨는 2년 뒤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판정을 받았다. 이씨의 부탁을 받고 살인을 청부한 혐의(살인교사 등)로 기소된 브로커와 살인 혐의로 기소된 중국동포 김씨가 각각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것과 비교해 중한 처벌을 받은 셈이다.

살인을 청부한 전 서울시 의원 김씨 역시 무기징역형이 확정됐고, 부탁을 들어준 중국동포 팽씨는 징역 25년을 선고받았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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