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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 마련 못해서" 세계 로봇대회 한국 대표, 결국 출전 포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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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말 경기도 오산 운천고 로봇 동아리 티씨 회원들이 로봇을 만들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이인우·하수종(졸업)·김희수 학생, 백진범 지도교사(현 타학교 전근), 김현우 학생. 김민욱 기자

지난달말 경기도 오산 운천고 로봇 동아리 티씨 회원들이 로봇을 만들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이인우·하수종(졸업)·김희수 학생, 백진범 지도교사(현 타학교 전근), 김현우 학생. 김민욱 기자

우수한 성적 거두고도 날아간 '꿈' 

경기도 내 한 고교 로봇 동아리 회원들이 세계적인 로봇 대회인 미(美) 퍼스트 재단의 ‘월드 챔피언십’에 한국 대표로 참가할 수 있는 출전권을 획득하고도 경비를 마련하지 못해 결국 세계 대회 출전을 포기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출전권은 뒷순위 팀에 돌아갔다.

오산 운천고 로봇 동아리 티씨(TC·Think Creative) 팀은 지난 1월 26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18-2019 코리아 로봇 챔피언십’(이하 케이알씨) 에프티씨(FTC·퍼스트 테크 챌린지) 부문에 참가해 우승을 차지했다. 케이알씨는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국내 최대 규모의 로봇 축제로 알려져 있다. 올 9회 대회에는 에프티씨 등 3개 부문에 220개팀 2000여명이 도전장을 냈다.

지난 1월 열린 코리아 로봇 챔피언십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FTC부문)한 운천고의 로봇. 김민욱 기자

지난 1월 열린 코리아 로봇 챔피언십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FTC부문)한 운천고의 로봇. 김민욱 기자

본선은 다음 달 24~27일 美 현지 열려

케이알씨는 비영리 민간 협회인 페스트(FEST) 창의공학교육협회가 주최·주관한다. 반도체 기업인 미(美) 퀄컴을 비롯해 주한 루마니아 대사관, 서강대, 레고 에듀케이션 등이 후원했다. 케이알씨 에프티씨 부문은 다음 달 24일부터 27일까지 미 디트로이트에서 개최되는 월드 챔피언십의 한국 대회 성격이다.

에프티씨 부문은 로봇 자율주행, 로봇 조종 등 도전 과제 외에 로봇 개발과정을 담은 엔지니어링 노트 심사까지 이뤄져 타 부문보다 상대적으로 까다롭다고 한다. 티씨 팀을 비롯해 모두 32개 팀이 출전했다. 국내 대회지만 일본·몽골·루마니아 등 해외 5개 팀도 포함됐다. 티씨 팀은 정확한 로봇 제어 기술 등을 선보여 상대적으로 고득점을 받았다고 한다.

1인당 300만원 경비 끝내 마련 못 해

운천고 팀의 우승이 지역사회에 알려지자 인구 22만의 오산시는 들썩였다. 오산시는 교육도시가 슬로건이다. 생존수영을 공교육에 처음 도입하는 등 여러 교육정책을 펴고 있다. 관공서 내 모니터에 송출되는 시정 홍보뉴스에 티씨 팀의 우승 소식이 소개됐다. 세계대회 출전 소식도 잊지 않고 전했다.

하지만 티씨 팀은 지난달 대회 사무국에 출전 포기의향을 밝혔다. 항공·숙박비 등 한 명당 300만원가량 소요되는 경비를 끝내 마련하지 못해서다. 출전권은 3위 팀에게로 돌아갔다. 2위 팀이 루마니아 청소년들이라 한국 대표로 출전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3위 팀은 세계 대회 출전을 확정 지었다. 경비를 자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자부담하지 않으면 우승을 해놓고도 정작 세계대회 출전은 불가능한 구조다. 국내 대회를 주최·주관하는 창의공학교육협회는 참가비 명목으로 팀당 35만원의 연회비(에프티씨 부문)를 받지만, 별도의 경비지원은 없다. 세계대회 출전 여부만 확인한다. 이런 방침은 대회 전 워크숍을 통해 공지된다. 협회 관계자는 “세계대회 출전 확인서에 포기 사유를 구체적으로 적지 않아 협회로서는 이유를 알기 어렵다”며 “다만 비영리 협회다 보니 국내대회 진행만도 빠듯하다. 경비 지원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협회는 기술교육 강의, 부품 등은 지원하고 있다.

케이알씨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이 도전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사진 FEST창의공학교육협회]

케이알씨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이 도전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사진 FEST창의공학교육협회]

"민간대회 참가 지원 형평성 논란 일수도"

학교는 형평성을 이유로 경비지원에 난색을 보였다고 한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특정 민간대회 경비를 예산으로 지원할 경우 형평성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민간 대회 중에도 정부 예산으로 경비를 지원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세계수학올림피아드와 같은 권위 있는 대회가 해당한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이 과학기술진흥기금·복권기금으로 마련한 재원을 활용, 출전 경비를 지원한다. 하지만 기금 사정이 빠듯하다고 한다. 실제 국제로봇올림피아드의 경우는 정부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자체도 마땅치 않았다. 오산시 관계자는 “운천고 티씨 팀의 사연을 듣고 상공회의소 등을 찾아 후원기업(인)을 알아보던 중 포기 소식을 들었다”며 “기업 후원을 받았더라도 100% 지원은 어려웠을 것이다. 내년에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소셜 펀딩 등 방법을 찾을 계획이다”고 말했다.

지난달말 오산 운천고 로봇 동아리 티씨 회원들이 로봇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지난달말 오산 운천고 로봇 동아리 티씨 회원들이 로봇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티씨 "미래 로봇 공학도 응원해달라!"

백진범 전 티씨 동아리 지도교사는 “몇 명은 ‘자비로라도 참가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지만, 지난 대회에 출전했던 11명 모두가 참가해야 의미가 크다는데 공감했다”며 “결국 포기 쪽으로 의견을 모으게 된 것이다”고 설명했다.

티씨 팀은 다시 로봇 연구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내년 대회를 위해서다. 2학년 이인우 군(대회 당시 1학년 팀장)은 “차가운 로봇에 뜨거운 열정 불어넣는 운천고 로봇 동아리 티씨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라며 “미래 로봇 공학도들을 지켜봐 주고 응원해달라”고 말했다.

오산=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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