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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타나모 간이재판은 위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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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달 29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쿠바의 관타나모 수용소에 있는 테러 용의자들을 간이법정인 군사위원회에서 재판받게 한 데 대해 "미 국내법과 국제법에 어긋나는 월권 행위로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이른바 특별군사법정 운영은 행정부의 월권 행위로, 행정부에 의한 이러한 자의적인 권력집중은 헌법의 대원칙인 3권분립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 수용소 폐지 여론 거세질 듯=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인권유린 논란을 일으킨 수용소의 폐쇄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날 위헌판결로 관타나모 수용소를 없애라는 여론이 국제사회에선 물론 미국 내에서도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의 운전기사 출신인 예멘 태생 살림 아흐메드 함단(36)의 제소로 군사위원회 문제를 심리한 주심 존 폴 스티븐스 대법관은 "부시 행정부는 민간법원보다 피고인 보호장치가 적은 특별군사재판 절차를 진행시킬 비상조치의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함단은 2004년 11월 연방지방법원에 "군사위원회의 재판이 아닌 정식 군사재판을 받게 해 달라"며 이의신청을 내 승소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연방 항소법원은 군사위원회 권한을 정지시켰던 지방법원의 판결을 뒤집었다. 보수 성향의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당시 연방 항소법원 판결에 관여했으며, 그 때문에 이번엔 스스로 심의를 기피했다.

◆ 부시 "군사위 간이재판 대신 정식 군사재판 추진"=부시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미국 국민은 이번 판결이 살인자들을 길거리에 풀어주라는 뜻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며 "수감자에 대한 군사재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의회와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존 워너 상원 군사위원장은 "수감자들을 국내법과 국제법에 맞춰 사법처리할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함단 대 럼즈펠드(미 국방장관)'로 명명된 이번 사건은 전시 재판부의 권한, 군사위원회의 적법성, 개인의 인권, 3권분립 등과 관련해 관심을 끌었다. ▶행정부가 전시라는 이유로 테러 용의자를 배심원제 재판, 항소권 부여 등과 같은 법적 보호를 생략하고 장기 구금할 수 있는가 ▶의회나 행정부가 간이법정을 설치해 법원의 재판권을 박탈하는 게 옳은가 등이 쟁점으로 부각됐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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