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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 신임 대사께 쓰는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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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신경진 기자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상생융화(相生融和)의 목표 아래 한·중 관계를 물적·인적·제도적으로 격상시키겠다.” 10년 전 류우익 주중대사의 취임사입니다. 류 전 대사는 광우병 ‘촛불시위’로 이명박 정부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에서 낙마한 뒤 베이징으로 왔습니다. 장하성 대사님 내정 소식을 듣고 옛 신문을 봤습니다. 교수·청와대·보은 인사…. 닮은 점이 적지 않았습니다.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부임 세 달 만에 천안함이 가라앉았습니다. 연평도 포격까지 국내 여론은 중국이 북한을 편든다며 들끓었습니다. 반면 중국 외교부는 “한국 정부의 대응은 중국이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며 류 대사에게 항의했다고 합니다.

류 대사는 천안함 정국에 미국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했습니다. 며칠 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찾았습니다. “대사의 외교력이 안 보인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베이징에서 몇 분께 조언을 청했습니다. “위기관리에 실패했던 류 전 대사의 전철을 밟지 말라.” 중국 한반도 전문가의 첫 번째 당부입니다. 한반도 위기 국면은 상수입니다. 이런 때 대사 역할이 막중하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한·중 사이에는 다양한 채널로 원활한 소통” 운운하는 외교적 수사 뒤에 엄존하는 불통을 직시하라는 쓴소리도 있었습니다. 현안인 북핵 해법을 놓고 한·중이 주도권을 경쟁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중국 분들은 대북 포용을 앞세운 두 나라가 역할 분담, 상호 보완하라고 조언했습니다.

곧 신설될 외교부 중국 전담국을 놓고는 중국이 북미국과 비교하며 끊임없이 한국 외교를 시험할 것이란 전망도 들려옵니다. 공공외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한 중국 교수는 “현재 두 나라의 바닥 민심은 솔직히 더는 나빠질 수 없는 수준”이라며 “방치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노파심에 사교성을 묻는 분도 계셨습니다. 중국은 판쥐(飯局·연회)의 나라입니다. 회담 석상의 말보다 식탁 위 발언을 비중 있게 기록해 상부에 보고한다더군요. 중국에서도 유명해진 번역서 『한국식 자본주의(韓國式資本主義』를 읽었습니다. 자본주의의 대안을 살핀 6장 중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보통 중국 사람들에게 ‘돈’은 거의 종교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이었다”는 중국 평가 문단 전체가 쏙 빠졌더군요. 대사님 생각과 중국이 다를 수 있다는 방증일 겁니다.

청와대 홈피에서 실장 시절 직접 찍은 댜오위타이(釣魚臺) 18호각 야경을 봤습니다. 백악관, 유엔총회장 사진도 직접 찍으셨더군요. 최고 수뇌부가 AI를 단체 학습하며 질주하는 중국 경제의 변화도 많이 찍어 청와대로 전하길 기대해 봅니다. 곧 베이징에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