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고이즈미 '끈끈한 밀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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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 대통령(左)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右)가 지난달 29일 백악관 만찬에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워싱턴 AFP=연합뉴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지난달 29일 마치 소리꾼과 고수(鼓手)처럼 죽이 착착 맞아 들어가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오전의 공식 환영식부터 오후 만찬 때까지 두 사람은 꿀처럼 달콤한 말들을 주고받으며 우애를 과시했다.

두 사람은 로큰롤의 황제인 엘비스 프레슬리의 '나는 너를 원하고, 필요하고, 사랑한다(I Want You, I Need You, I Love You)'를 함께 부르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선 미사일을 발사해선 안 된다고 하는 등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한.일 관계와 중.일 관계를 경색시킨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넘어갔다. 두 사람은 30일 미국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을 함께 타고 테네시주 멤피스의 엘비스 저택을 방문했다. 엘비스의 아내였던 프리실라와 딸 리사 마리가 두 정상을 안내했다.

?"부시, 고이즈미에게 전축 선물"=부시는 고이즈미에게 1954년형 자동전축(jukebox)을 선물했다. 이 전축엔 고이즈미가 좋아하는 엘비스의 노래 25곡이 들어 있다고 한다. 고이즈미는 선물을 받고 "이 주크박스로 가정 먼저 듣고 싶은 건 'I Want You, I Need You, I Love You'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곧바로 그 곡을 찾았다. 그리고 노래를 불렀다. 부시도 함께 열창했다고 부인 로라가 밝혔다. 이 노래는 고이즈미가 가장 먼저 배운 영어 노래로 알려졌다.

고이즈미는 답례로 부시에게 미국의 전설적인 야구선수 베이브 루스가 일본에서 경기한 모습을 담은 일본 우표를 확대한 대형 사진과 자전거를 선물했다. 부시가 스포츠를 좋아한다는 걸 고려한 선물이다.

?엘비스 끌어들인 발언 만발=부시는 이날 재임 중 여덟 번째로 외국 정상에 대한 백악관 공식 만찬을 고이즈미에게 베풀었다. 쇼트트랙의 '반칙왕' 안톤 오노와 미국 야구의 전설적인 강타자 행크 애런 등이 초대된 만찬에서 부시는 엘비스를 고이즈미에 비유했다. 고이즈미를 최고로 치켜세우기 위해 그런 것이다. 부시는 "당신(고이즈미)처럼 그(엘비스)도 아주 훌륭한 머리카락을 가졌으며, 당신처럼 그도 대중 앞에서 노래를 잘하는 걸로 알려졌고, 당신처럼 그도 자기 나라에서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열성 팬들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걸 들은 고이즈미는 "끈질기고 단호한 마음으로 자유와 정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 온 부시 대통령을 존경한다"며 "나는 때로 내가 좋아하는 서부 영화 '하이 눈'의 주인공 게리 쿠퍼와 미국의 이미지가 같다고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고이즈미는 정상회담 직후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엘비스의 노래를 인용, "나를 부드럽게 사랑해 주세요(Love Me Tender)'"라고 말했다.

?의미심장한 쇠고기 요리=백악관은 만찬 주식으로 미국산 쇠고기 스테이크 요리를 내놓았다. 광우병을 이유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금지했다가 지난주 이를 해제한 일본을 의식한 메뉴다. AP통신은 "부시가 고이즈미에게 TV 카메라 앞에서 '고기 맛이 좋다'는 말을 하도록 재촉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에돌퍼스 타운스 하원의원은 이날 정상회담에 맞춰 "일본의 종군위안부를 동원한 만행에 대해 일본 정부가 사과하지 않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내용의 발언록을 하원에 제출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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